정재훈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이 24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아랍에미리트(UAE)와 맺은 바라카 원전 정비사업 계약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원자력발전소 수명인 60년 동안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수출 원전을 운영하면서 거둘 매출이 55조원에 달한다.”

2016년 박근혜 정부는 한국이 해외에 처음으로 수출한 원전인 UAE 바라카 원전 1~4호기의 운영권을 60년간 맡게 됐다며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그러나 거짓이었다. 현재 정부가 맺은 건 운영지원계약(OSSA)이 전부다. 이 계약은 바라카 원전 4호기 준공 후 10년까지를 운영기간으로 정하고 있다. 24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바라카 원전 정비사업 계약과 관련해 브리핑한 정재훈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은 “당시 희망사항을 강력하게 표현했던 것”이라고 인정했다. 아랍에미리트원자력공사(ENEC)와 바라카 원전 운영사업에 대한 투자계약을 체결하면서 한국이 지은 한국형 원전인 만큼 원전수명(60년)대로 한국이 운영하게 될 것이란 막연한 생각에 정부가 ‘과대 홍보’했다는 것이다.

기대보다 못 미친 바라카 원전의 정비계약 논란도 이 같은 ‘장밋빛 전망’에 취해 있던 정부의 안일한 대응이 자초했다는 분석이다. 2016년까지만 해도 원전 업계에선 UAE가 한전KPS와 바라카 원전 장기정비계약(LTMA)을 맺을 것으로 예상했다. 바라카 원전 핵심인 한국형 원자로(APR1400)의 정비 노하우를 갖고 있어서다. LTMA는 바라카 원전 4기의 정비ㆍ수리를 10~15년간 독점적으로 맡는 사업이다. 2조~3조원 규모다.

그러나 한전KPS와 계약 조건을 두고 마찰이 빚어지자 UAE는 2017년 2월 한국과의 단독 수의계약 협상을 끝냈다. 이후 UAE는 경쟁 입찰로 전환했다. 영국 두산밥콕과 미국 얼라이드파워가 뛰어들었다. 정부는 부랴부랴 한수원과 한국전력, 한전KPS 등으로 이뤄진 ‘팀코리아’를 꾸려 수주 총력전을 펼쳤다. 그런 와중에 UAE는 바라카 원전 운영사인 나와(Nawah)가 정비를 포함한 원전 운영 전체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으로 자국 원전 규제를 수정했다. 이에 따라 원전 정비 계약 형태도 정비사업자에게 일괄로 맡기는 방식이 아니라, 각 서비스 별로 정비사업자를 선정하는 ‘장기정비서비스계약(LTMSA)’으로 바꿨다. 원전 정비와 관련한 일감을 누구에게 배분할 지에 대한 최종 결정권을 손에 쥐고, 원전 운영 경쟁력 강화에 나선 것이다. 이날 나와가 배포한 보도자료에 ‘나와의 주도 하에’란 표현이 네 차례나 들어간 것도 이런 맥락이다.

당초 정부는 15년간 원전 정비 업무를 일괄 수주해 최대 3조원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기대했으나, 우여곡절 끝에 맺은 이번 정비계약 기간은 그보다 훨씬 못 미치는 5년(양사 합의에 따라 연장 가능)에 그친다. 일괄 수주가 아니어서 매출액도 수천 억원 수준에 그칠 거란 전망이다.

정부 관계자는 “당연히 우리가 정비를 맡게 될 것이란 생각이 깔린 상태에서 UAE와 협상을 진행했다”며 “그때만 해도 UAE가 다른 대안을 찾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한국형 원전에 대한 정비이니, 당연히 한국에게 맡길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지금의 논란을 낳게 됐다는 얘기다. 석광훈 녹색연합 연구위원은 “우리나라도 1980년대 원전을 들여올 때 당초 유력했던 미국 웨스팅하우스 대신, 원전 도면을 통째로 주기로 한 컨버스천엔지니어링과 계약을 맺었다”며 “원전 시장은 수요가 급격히 줄고 있어 철저히 구매자 우위 시장인데 정부가 너무 안일하게 접근했다”고 꼬집었다.

하지만 이번 계약을 바라보는 정부의 시선은 여전히 장밋빛 기대에 차 있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계약 기간은 단기간에 그치지 않고 10년, 15년, 30년을 계속해서 협력할 수 있는 형태”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5년 뒤 UAE가 미국, 프랑스 등 원전 기술 선진국을 제치고 한국과 계약 연장을 할지 장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탈원전 여파라는 일각의 지적을 일축했다. 성 장관은 “UAE가 우리 정부의 원자력 정책 방향과 바라카 원전 사업을 연계해 얘기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강조했다. 나와 역시 “정비 파트너를 선정하기 위한 의사결정은 한국의 원전 정책과 무관하다”고 밝혔다. 박종운 동국대 원자력ㆍ에너지시스템공학과 교수도 “원전 기술 역량이 사라지는 게 아니고, 정부도 원전 생태계를 육성하겠다고 밝힌 만큼 탈원전을 계약 축소의 원인으로 보는 건 무리수”라고 말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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