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빛 1호기 수동정지 사건 재구성
전남 영광군 한빛 원자력발전소 1호기 수동정지 사태는 원전이 얼마나 허술하게 운영, 관리돼왔는지를 여실히 드러냈다.
정기점검을 마치고 지난달 9일 원자력안전위원회부터 재가동 승인을 받은 한빛 1호기는 이튿날인 10일 원자로의 핵연료반응 제어 성능을 시험하던 중 오전 10시31분 보조급수펌프가 돌아가는 이상 현상이 나타났다. 5%를 넘지 말아야 할 원자로 출력(열출력)이 18%까지 치솟았기 때문이다. 원전 운영기술지침서에 따르면 이런 경우 원자로를 즉시 정지해야 하지만 원전 운영사인 한국수력원자력 측은 시험을 계속했다. 한수원은 일부 열출력 계측기 값이 5%를 초과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으나, 원안위 조사 결과 사실이 아니었다. 한수원이 지목한 계측기 역시 열출력 5%를 넘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한수원은 운영기술지침을 준수하지 않았고, 이는 원자력안전법 위반이다.
열출력이 급증한 것은 계산 오류 때문이다. 당일 오전 핵반응을 제어하는 장치(제어봉)들을 조작하는 동안 일부 제어봉 위치에 편차가 발생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한수원은 제어봉을 인출하기로 했고, 원자로 운영인력(운전원)인 원자로차장이 설계문서를 토대로 반응도(원자로 출력의 변화 정도)를 계산해 인출해도 괜찮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조사 결과 당시 원자로차장은 설계문서를 제대로 인용하지 못해 잘못된 반응도의 값을 계산한 것으로 나타났다. 계산 오류로 제어봉을 과도하게 인출하는 바람에 열출력이 순간적으로 치솟은 것이다.
이처럼 어이 없는 오류가 생긴 건 원자로차장이 관련 교육을 받지 못해서다. 제어봉 성능을 측정하는 방법은 동적측정법과 붕소희석법의 두 가지가 있다. 한빛 1호기는 지난 14년 동안 동적측정법으로 제어봉 성능을 판단해왔다. 한수원은 수동정지 전날 동적측정법으로 측정을 시도했지만, 데이터 간섭 현상 때문에 실패했고 붕소희석법으로 측정법을 변경했다. 그런데 원안위에 따르면 해당 원자로차장을 포함한 대부분의 운전원들은 붕소희석법에 대해선 교육 훈련을 제대로 받지 않은 상태였다.
익숙하지 않은 방법으로 제어봉 성능을 측정해야 하는 상황인데도 한수원은 면허가 있는 운전원이 아닌 정비부서 정비원에게 제어봉 조작을 맡겼다. 제어봉 위치 편차가 발생한 게 바로 정비원의 조작 미숙 때문이다. 원안법에 따르면 제어봉 조작은 원자로 면허가 있는 운전원이 해야 한다. 면허가 없는 사람은 면허 소지자의 감독을 받아 제어봉을 조작해야 하는데 당시 면허자의 감독은 없었다. 이 역시 원안법 위반이다.
붕소희석법은 제어봉 성능 측정에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한빛 1호기 재가동 준비는 24시간 이상 이어졌다. 그래서 운전원들은 10~11명으로 구성된 근무조 3개로 나뉘어 돌아가며 투입됐다. 한수원 자체 절차서에 따르면 근무조 교대 때마다 주요 사안 인수인계를 위한 중요작업전회의를 해야 한다. 하지만 한빛 1호기 운전원들은 첫 근무조만 이 회의를 했고, 이후 2차례 교대 땐 회의를 생략했다. 한수원 절차서 위반이다. 운전원 이외 다른 직원들은 장시간 초과 근무까지 했다. 노심 파트 직원 중 한 명은 무려 25시간 동안 연속으로 일했다. 이에 대해 원안위는 근로기준법 위반 여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제어봉 인출과 함께 치솟았던 열출력 수치는 제어봉 삽입으로 10분 이내에 1% 미만으로 떨어졌다. 핵연료 손상이나 방사능 누출 등은 없는 것으로 확인했다고 원안위는 밝혔다. 원안위 관계자는 “추가 조사 후 재발 방지 대책을 포함한 종합 결과를 발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임소형 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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