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견제 점입가경… “자국서 사용 5G 통신장비 모든 중국산 배제 방안 검토”
미국이 자국 내에서 사용될 5세대(5G) 이동통신 장비를 중국 이외의 지역에서 설계ㆍ제조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바꿔 말하면 중국이 디자인하거나 만들어내는 5G 장비에 대해선 미국 내 사용을 금지하는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러한 움직임은 글로벌 제조업 지형을 송두리째 뒤바꾸는 것은 물론, 화웨이와 중국 슈퍼컴퓨터 기업들에 대한 미국의 제재로 고조되는 미-중 갈등을 한층 더 부채질할 것으로 보인다.
23일(현지시간)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이같이 보도했다. 앞서 백악관은 지난달 사이버안보 위협을 이유로 일부 외국산 네트워크 장비와 서비스에 제한을 가능케 하는 행정명령을 내린 바 있다. 이에 따라 오는 10월까지 150일간 미국 전기통신 공급망을 재검토하는 작업이 시작됐는데, 5G 장비와 관련한 이번 ‘중국 배제’ 방안 논의도 그 일환이다.
WSJ에 따르면 미 행정부 관리들은 최근 통신장비 제조업체들에 ‘미국 수출용 하드웨어를 중국이 아닌 다른 국가들에서 제작하고 개발할 수 있는가’라고 묻고 있다. 거론된 장비 목록에는 데이터 수집이 가능한 ‘지능형 부품’으로 분류되는 휴대폰 기지국 전자기기와 라우터, 스위치 등이 포함돼 있다. WSJ는 “연 2,500억달러 규모인 전 세계 무선통신 산업에서 미국은 최대 시장”이라며 “미 행정부의 문의는 미국에 무선통신 장비를 판매하는 노키아(핀란드), 에릭슨(스웨덴) 등 글로벌 대기업들의 탈(脫)중국 현상을 일으킬 수 있다”고 전했다. 노키아와 에릭슨은 제조업 시설의 10%, 45%(지난해 기준)를 각각 중국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이 이처럼 노골적으로 대중 견제에 나선 건 중국 정부가 자국 통신장비 기술자들에게 ‘보안 구멍’을 뚫어 놓으라고 지시할 가능성을 우려해서다. 보안상 허점을 심어 둠으로써 미국 내 통신기기를 정보 수집 도구로 삼거나, 원격 제어를 통해 교란 또는 사용 불능 사태를 야기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미국 의회 내 미중경제안보검토위원회의 마이클 웨슬 의원은 “주된 국가 안보 우려는 중국 국유기업들에 향해 있지만, 중국에서 운영되는 어떤 회사든 그들의 생산 장비엔 (중국의) 인력과 시설이 접근하는 만큼 보안이 취약할 위험이 크다”고 말했다. 다만 소식통들은 “논의는 아직 초기 단계이며 비공식적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미국은 이미 중국 통신장비제조업체 화웨이를 ‘거래금지 기업’ 명단에 올려둔 상태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미국은 이제 서방 통신장비 제조업체들을 상대로 ‘중국 의존 공급망의 재편성’을 요구하는 새로운 단계에 진입하고 있다는 게 WSJ의 진단이다. 신문은 “세계 경제ㆍ정치 질서 재편을 둘러싼 미중 간 경쟁의 일부”라며 “조만간 해결될 수도 있는 무역 분쟁과는 달리, 국가 안보 우려는 미국에서 쓰이는 기술의 설계ㆍ제작 장소를 영구적으로 바꿔버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중국 정부는 미국의 움직임에 대해 반발했다. 겅솽(耿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4일 “이런 주장을 하는 인사들은 스스로 만든 공포 속에서 생활하는 것 같다”며 “차단과 분리의 방식으로 자신의 절대 안전을 추구하는 것은 황당무계한 소리”라고 덧붙였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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