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19일 부산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지역 경제인들과 조찬간담회에서 “외국인은 우리나라에 그동안 기여해온 바가 없기 때문에 산술적으로 똑같이 임금 수준을 유지해줘야 한다는 건 공정하지 않다.”고 발언해 정치권에서 논란이 됐다. 연합뉴스

일본에서 처음으로 한 지방자치단체가 헤이트 스피치에 대한 벌칙 규정을 추진한다고 한다. 가나가와(神奈川)현 가와사키(川崎)시가 혐한(嫌韓) 발언이나 집회 등 헤이트 스피치(특정 집단에 대한 공개적 차별ㆍ혐오 발언)를 하는 사람에게 1만 엔 이상의 벌금을 부과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한다. 일본 극우세력의 혐한 발언은 듣기에도 민망하고 화가 치솟는다. 유태인에 대한 히틀러의 헤이트 스피치는 당시 다수의 독일인들을 열광시켰고 그 광풍은 히틀러가 죽고 독일이 패망할 때까지 극심했다. 수많은 유태인들이 학살되었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기도 하지만 함부로 놀린 세 치 혀가 살인도 부른다. 요즘 몇몇 정치인들의 막말 경쟁이 점입가경이다. 막말을 지적하면 반성하는 게 아니라 그걸 막말이라고 부르는 게 막말이라며 코웃음 친다. 그 정도면 할 말이 없다. 아무리 막말을 쏟아내도 그걸 제대로 징계하지 않으니 너도 나도 나댄다. 그렇게라도 해서 언론에 노출되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다고 여기는 정치적 셈이 아니고서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막말들이다. 그걸 받아들이는 유권자들도 문제지만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그런 말을 공개적으로 전달하는 게 통한다고 믿는 후진 정치인들을 내년 선거에서 걸러내야 한다.

그런데 야당의 대표가 내뱉는 말이 갈수록 위태롭다. 급기야 “외국인은 우리나라에 그동안 기여해온 것이 없다”며 국내 노동자와 같은 임금수준을 유지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고 말했다. 무슨 의도인지 모를 사람 없다.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호응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그런 말했을 것이다. 그게 무섭고 두렵다. 그 점을 주목해야 한다. 그의 발언은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위반일 뿐만 아니라 현 근로기준법에도 위배되는 내용이다. 그것을 비판하자 최저임금 산정 기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취지라고 변명했다. 외국인노동자들이 한국경제에 끼친 영향 등에 대한 반박에 대해서는 외국인노동자들에게 오히려 혜택을 더 주는 게 적절치 않은 측면을 말한 것이라고 했다. 최소한 법적 근거에 대한 인식 자체가 결여된 말이다. 전직 법무장관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온다는 게(하기야 공안검사로 출세한 사람의 시야를 고려하면 조금은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아연하다. 기본적인 근로기준법과 ILO협약 모두를 부인하는 가치관으로 정치한다는 게 놀랍거니와 거기에 호응하고 환호작약하는 수구언론과 유권자들이 있다는 게 더 걱정이다.

그걸 비판했더니 이제는 사과는커녕 “야당대표 공격에만 힘 쏟아서야 되겠느냐”며 맞받아친다. 오죽하면 어떤 야당의원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발언이라며 “외국인 노동자 최저임금을 적게 주게 되면 한국 청년들 일자리만 더 줄어드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우려를 표할까. 우리가 필요해서 데려온 외국인 노동자들이고 그들이 한국경제에 끼친 경제유발 효과가 수십 조 원에 달한다는 보고도 있다. 우리도 과거에 서독이나 중동에 가서 일했다. 그런 건 외면하고 정치적 이익을 위해 무책임하게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아 표를 끌고자 하는 것은 넓은 의미의 헤이트 스피치다. 대기업들이 막대한 이익으로 유동성을 쌓아놓고도 미래가치와 일자리를 만들어낼 투자에는 인색한 건 따지지 않는다. 높은 임대료로 문 닫는 가게의 본질은 외면하고 만날 최저임금 때문이라고 떠든다.

정치권에서 하도 막말이 쏟아지니 여기저기서 ‘품격의 언어’를 주문한다. 그러나 당사자가 ‘언어의 품격’을 모르거나 인간의 품격이 없다면 품격의 언어는 언감생심이다. 정확하고 객관적이며 생산적 비판을 위한 비평은 반드시 필요하고 그걸 시비해서는 안 된다. 그냥 듣기 싫다고 입 틀어막는 게 바로 독재다. 자신들이 과거에 그랬다. 그런데 적반하장으로 그 입에서 독재 운운하는 게 웃긴다. 자신이 뱉은 말이 근거가 빈약하고 무엇보다 불온한 의도를 가지고 말하며 특정한 사람들을 제물로 삼아 막말을 쏟아내서 정치적 지지를 얻으려 하는 것은 정확히 헤이트 스피치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은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은 사람이 아니라 ‘한 권의 책만’ 읽은 사람이다. 그는 오직 그 시선으로 자신의 사고를 판단하고 행동하며 자기정당화를 마련한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어떠한 객관적 비판도 오불관언이다. 교조주의자들이 오로지 하나의 도그마로 매사를 재단하는 건 그 때문이다. 그런 의식 자체가 독재적 사고다. 하나의 시선만 허용한 사회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그런 사고에 익숙하다.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권력의 지근에서 성장한 사람들이 책을 전혀 읽지 않았다고는 상상할 수 없다. 많은 책을 읽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기가 읽고 싶은 부분만’ 혹은 ‘자기가 해석하고 싶은 방식으로만’ 책을 읽었다면 그것은 한 권의 책만 읽은 교조주의자의 방식일 뿐이다. 어차피 인간의 품격이나 언어의 품격을 기대하기 어렵고 품격의 언어를 요구해봐야 무소용이니 차라리 여러 책들을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책 한 권만 읽은 사람이 가장 두렵고 해롭다. 그런 사람이 되어서야 되겠는가.

김경집 인문학자

공감은 비로그인 상태에서도 가능합니다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