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자국민 송환 조치
1990년 구소련으로부터 독립한 조지아(옛 그루지야)에서 이뤄진 러시아어 연설 하나가 대대적인 정권 퇴진 시위의 불을 댕겼다.
22일(현지시간) AP통신 등에 따르면, 조지아 수도 트리빌시 시내 의회 청사 주변에선 1,500여명의 시민이 모여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전날 벌어진 시위에서 경찰의 강경 진압으로 수백 명이 부상당한 데 대한 책임을 지고 내무장관이 물러날 것을 요구하는 한편 체포자 석방, 조기 총선 실시 등을 주장하고 있다.
전날 시위에서 시민들은 의회 건물 안으로 진입을 시도했고, 경찰은 고무탄과 최루탄, 물대포를 발사하며 강경 진압했다. 그 결과 최소 240명이 다친 것으로 전해졌다. 현지 병원 관계자는 “부상자 중 100여명이 입원했고, 두 명은 고무탄에 맞아 실명했다”고 전했다. 21일 시위에선 실명한 시민들에 연대의 의미로 상당수 참가자가 안대를 착용하기도 했다.
당초 이번 소요 사태는 조지아 출신의 세르게이 가브릴로프 러시아 하원의원의 연설로 촉발됐다. 정교회 국가 의회 간 모임인 ‘정교회 의회 간 회의(IAO)’ 의장을 맡고 있는 가브릴로프는 20일 조지아 의회 의장석에서 조지아어가 아닌 러시아어로 연설을 했고, 이것이 조지아 국민들의 반(反)러 정서를 자극한 것이다.
조지아는 2003년 무혈 ‘장미혁명’ 이래 친(親)서방 노선을 택했다. 반면 조지아에 대한 영향력을 회복하고 싶었던 러시아는 조지아 내에서 분리ㆍ독립운동을 폈던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를 지원했고, 이는 결국 2008년 8월 양측 간 전쟁으로 이어졌다. 전쟁 결과 조지아는 전체 영토의 20%를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에게 내주며 러시아와는 그 즉시 단교했다. 러시아는 이번 소요 사태 심각성을 인지하고 조지아에서의 자국민 송환에 나섰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1일 자국 항공사의 조지아행을 내달 8일부터 잠정 중단하는 내용의 명령에 서명했다. 또 관광 등의 목적으로 조지아 체류 중인 자국민 1,500여명을 내달 8일까지 운항되는 자국 항공편을 통해 순차적으로 귀국시킬 계획이다.
반면 조지아 야권은 푸틴 대통령의 조치가 연 수백만 명에 달하는 러시아인의 조지아 방문을 막아 조지아 경제에 타격을 주려는 의도라고 비난했다. 실제 러시아는 조지아의 제1 교역국으로 경제적으로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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