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이미지뱅크

“동생이 술만 먹으면 나를 누나로 취급하지 않고 무시하며, 행패를 부리고 때렸다.”

조현병을 앓고 있던 40대 동생에게 살해된 누나의 일기장 적힌 내용 중 일부다.

두툼한 노트에 적힌 일기에는 술만 먹으면 폭력성이 더해지며 가족에게 행패를 부리는 동생, 그런 동생은 거의 매일 술을 먹었다고 적혔다. 거의 매일 반복되는 술 먹은 동생의 폭력성은 100여장의 노트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가득 메울 정도로 빼곡히, 구체적으로 적혀 있었다고 한다.

누나의 일기장은 조현병 진단을 받아 심신미약 상태인 동생의 우발적 범행보다 상습적으로 이뤄진 폭행에 의한 범행을 알리는 결정적 단서가 됐다.

수원지법 형사12부(김병찬 부장판사)는 존속살해 혐의로 기소된 이모(43) 씨에 대해 징역 20년을 선고했다고 22일 밝혔다.

이번 판결은 부모 모두를 살해한 존속살인 피의자에게 통상 12~15년 형이 내려지는 판례보다 무겁게 선고된 이례적인 경우다.

앞서 이씨는 지난해 12월 28일 오전 4시쯤 경기 수원시 권선구 집에서 아버지(68)와 누나(44)를 목 졸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또 기르던 강아지를 흉기로 찔러 죽였다. 범행 7시간여 뒤 경찰에 스스로 신고해 검거된 이 씨는 “‘아버지와 누나, 강아지를 죽이지 않으면 너를 죽여버리겠다’는 환청을 듣고 범행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 이씨는 2007년 병원에서 조현병 진단을 받았고, 선고 직전에 재판부가 의뢰한 공주치료감호소의 감정결과에서도 ‘심신미약 상태가 인정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법 게티이미지뱅크

이에 재판부는 이 씨에 대한 정신감정 결과 등을 토대로 이씨가 조현병으로 인해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 결정 능력이 미약한 상태에서 아버지와 누나를 살해한 점을 인정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그에게 심신미약을 이유로 형을 가볍게 내리지 않았다.

검찰도 당시 이씨에게 혐의를 적용할 때 ‘심신미약’을 포함하지 않은 채 일반인과 같은 존속살인 혐의만을 적용 기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누나의 일기장에 고스란히 담긴 동생의 폭력성향이 단서가 된 것이다.

조현병 진단을 받았고, 술을 먹으면 폭력성이 더해진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씨는 거의 매일 술을 먹었고, 아버지와 누나에게 행패를 부려왔다는 것이 인정된 것이다.

재판부도 판결문을 통해 “피해자들은 평소에도 피고인의 정신질환으로 인한 폭력성향에 빈번하게 노출돼 왔다가 결국 이사건의 범행으로 죽음에 이르게 됐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피고인에 대해 심신미약 상태임을 인정한다고 해도 가족의 생명이라는 존엄한 가치를 침해한 것은 중대한 범죄”라며 “피고인의 반사회성 등에 비춰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임명수 기자 sol@hankookilbo.com

공감은 비로그인 상태에서도 가능합니다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지역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