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1일 신임 청와대 정책실장에 임명한 김상조 전 공정거래위원장의 진심은 무엇일까. 김 신임 정책실장은 학자 시절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경제개혁연대 등의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며 재벌개혁운동에 앞장섰다. 이 때까지만 해도 ‘재계 저승사자’, ‘삼성 저격수’ 등의 별명을 얻었을 정도로 강성 이미지였다. 그러나 2017년 공정위원장에 취임한 이후에는 ‘친재벌’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달라졌다는 평가도 있다. 참여연대 시절부터 공정위원장에 이르기까지 김 실장의 주요 발언을 모아봤다.
노무현 정부 출범 직전 “재벌 개혁은 새 정부의 절대적 과제”
김 실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 취임을 앞둔 2003년 1월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성명을 통해 “재벌 개혁을 위한 법ㆍ제도 개선 및 엄정한 집행은 새 정부의 절대적 과제임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계열사 독립경영이 이뤄지지 않는 현재의 재벌 총수 체제와 경영권 확장 및 지배권 유지 현상이 사라질 때까지 재벌 개혁은 빠뜨릴 수 없는 과제일 것”이라고 했다. 학자로서 재벌개혁에 목소리를 높이던 시기다.
삼성 주총에선 “기업 변화 통해 사회 지배구조 변화 이끌어야”
2005년 2월에는 대표적 재벌 삼성전자 주주총회에 참석해 재벌 개혁을 강조했다. 김 실장은 “기업은 시장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지 못하면 존속할 수 없다. 기업의 변화를 통해 사회지배구조의 변화를 이끌어 내려는 취지이며 기업의 변화 능력을 믿는다”고 강조했다.
경제개혁연대 소장 시절 “기업 규제 완화는 일부 재벌에 특혜”
경제개혁연대 소장을 맡고 있던 2008년 2월에는 한 언론을 통해 “각종 기업 규제 완화 조치는 중소기업보다는 일부 재벌에게만 특혜를 가져다 줄 뿐”이라고 비판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직전이었다. 그는 또 “현재와 같은 경제산업 구조에선 일자리 창출도, 양극화 해소도 기대하기 어렵다. 소수 재벌에게만 좋은 경제 환경이 아니라, 모든 기업에 공정하고, 모든 기업 이해관계자가 수긍할 수 있는 경제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언급했다. 일관된 재벌 개혁론자였던 셈이다.
삼성 사장단 회의 나가 “나는 삼성을 사랑한다”
그런데 김 실장이 돌변한 걸까. 그는 박근혜 정부 초기인 2013년 7월 열린 삼성 사장단 회의에선 강연자로 나서 이색적인 발언을 했다. 김 실장은 당시 “나는 삼성의 적이 아니다. 삼성을 사랑한다. 다만 사랑하는 방식이 조금 다를 뿐이다. 삼성의 리더십이 바뀌어야 한다. 열린 광장으로 나와서 사회 구성원과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공정위원장 취임 후 “재벌 개혁 속도 맞출 것”
지난해 5월 10대 그룹의 경영진을 만나서는 재벌 개혁의 속도조절을 약속했다. 문재인 정부 초대 공정위원장 취임 1년이 된 시점이었다. 김 실장은 “재벌 개혁의 속도와 강도를 맞추고 3년 내지 5년의 시계 아래 일관되게 추진하겠다. 일각에서 재벌 개혁이 너무 느슨하고 느리다고 비판하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 기업을 거칠게 옥죈다고 비판한다. 한쪽의 시각에 치우치기보다 현실에 맞게 양쪽 비판 사이에서 균형을 잡겠다”고 밝혔다.
“기업에 맡기겠다” “나는 재벌을 좋아한다”
공정위원장 시절 그의 유화 발언은 여러 차례 있었다. 지난해 10월에는 “지금은 지주회사와 일반 그룹 사이에 지배구조 형태의 큰 차이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개별 그룹의 조직 형태에 격차가 있지 않다면 무엇을 선택할지 기업에 맡기겠다”고 말했다.
김 실장은 또 지난 3월 세르비아에서 열린 국제경쟁정책 워크숍 기조강연에서 “나는 재벌을 좋아한다(I like ‘chaebol’). 재벌은 한국의 소중한 경제 자산으로,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에도 그러하며, 미래에도 그러할 것”이라고 발표하기도 했다.
같은 달 14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국제경쟁회의에서는 “큰 것을 나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크다는 것 자체는 중립적인 개념으로, 크다는 것이 경쟁 당국의 규제 논거가 될 수 없다. 삼성, LG, 포스코, 현대차 등은 미래에도 한국 경제성장의 동력일 것이며, 모든 한국인은 이 기업들을 자랑스럽게 여길 것이다”라고 말했다.
과연 김상조 실장의 향후 행보는 학자 시절 원칙적 발언들에 맞춰져 있을까, 아니면 공정위원장 시절 유연한 현실 인식에 더 가까울까. 그의 움직임에 관심이 집중되는 시점이다.
윤한슬 기자 1seu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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