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시민들이 21일(현지시간) 또다시 거리로 나섰다.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의 추진이 시민들의 거센 반발로 일단 중단되긴 했으나, 홍콩 정부가 ‘완전한 철회’ 약속을 하지 않은 데다 앞서 시위 과정에서 문제가 됐던 경찰의 과잉진압 문제에 대해서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자 다시 한번 대규모 시위를 벌인 것이다. 특히 정부에 대한 시민들의 반감과 불신이 증폭되는 양상까지 보이고 있어, 당분간 홍콩의 정국 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영국 BBC방송과 가디언,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 외신에 따르면, 이날 시위대는 오전 7시쯤부터 정부청사와 입법회가 있는 애드머럴티 지역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시위대는 정부청사 빌딩을 둘러싸며 이곳으로 향하는 도심 주요 도로를 점거했고, 일부는 경찰본부로 이동해 건물을 포위하기도 했다. 수천명가량으로 집계된 시위 참가자 대부분은 검은 옷에 마스크를 착용했다.
이날 시위는 전날 홍콩 대학생들이 제시한 4대 요구 사항을 정부가 받아들이지 않자 열린 것이다. 앞서 홍콩중문대와 홍콩과기대 등 7개 대학 학생회는 지난 20일 정부에 △송환법 완전 철회 △12일 시위에 대한 ‘폭동’ 규정 철회 △12일 시위 과잉진압 책임자 처벌 △체포된 시위 참가자 전원 석방 등을 요구했다. 그러나 정부는 마감시한으로 제시된 ‘21일 오후 5시’까지 별다른 응답을 내놓지 않았다. 지난 12일 송환법 저지 시위 당시 경찰이 최루탄과 고무탄, 물대포 등을 사용해 81명의 부상자가 발생하는 등 과잉진압 논란이 일었는데, 특히 캐리 람 행정장관과 스테판 로 경무처장은 시위를 ‘폭동’으로 규정해 시민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이날 시위에는 2014년 ‘우산 혁명’의 주역으로 수감됐다가 지난 16일 석방된 학생 지도자 조슈아 웡(黃之鋒ㆍ22)도 참가해 눈길을 끌었다. 경찰본부 앞 시위를 이끈 웡은 로 경무처장을 향해 “시민들 앞에 나와 대화를 하자”면서 지난 12일 시위 때 체포된 사람들의 석방 및 기소 철회를 요구했다. 63세 여성인 알렉산드라 웡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경찰 폭력에 항의하기 위해 여기 나왔다. 경찰이 시민을 다치게 하고, 체포하고, 최루가스를 사용하는 건 완전한 불의”라고 말했다.
BBC는 이날 시위가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고 전했다. 그러나 정부를 향한 시위대의 분노는 상당하다. ‘아비’라고만 이름을 밝힌 20세 시민은 BBC에 “람 장관의 사과는 진실되지 못했다”며 “난 여전히 람 장관이 사임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그가 두 번째 기회를 원한다면 최소한 송환법 완전 폐기 약속을 해야 한다”고 강한 불신을 드러냈다. 이름을 밝히길 거부한 한 시위자는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평화로운 시위는 지금까지 별 소용이 없었다. 우리에겐 정상적인 (소통) 채널이 없다. 우리가 행동의 강도를 높이는 이유”라고 대정부 투쟁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디언은 “홍콩 시위는 초기엔 송환법 반대로 촉발됐으나, (지금은) 경찰 폭력에 대한 수사 촉구, 시위에 대한 정부 탄압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면서 양상이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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