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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평양냉면 면발을 뜨거운 물에 반죽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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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평양냉면 면발을 뜨거운 물에 반죽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입력
2019.06.26 04:4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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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냉면에 많이 들어가는 메밀가루로 만든 메밀 면. 게티이미지뱅크
평양냉면에 많이 들어가는 메밀가루로 만든 메밀 면. 게티이미지뱅크

평양냉면 면발이 툭툭 끊어지고 꺼끌꺼끌한 건 메밀 함량이 높아서다. 평양냉면의 면은 메밀가루와 전분(녹말가루)을 섞어 뜨거운 물에 반죽한 뒤 작은 구멍이 뚫린 틀에 눌러 만든다. 메밀가루와 전분 비율은 7대3, 6대4 등 다양하다. 북한의 평양냉면은 이보다 메밀함량이 더 높다.

시중에서 파는 간편식 평양냉면은 메밀 함량이 낮다. 5~10% 정도다. 나머지는 밀가루와 전분이다. 최종택 CJ제일제당 식품연구소 식품개발센터 수석연구원은 “유통기한을 늘리기 위해 간편식 평양냉면은 면을 뽑은 뒤 알코올에 담근다”고 설명했다. 휘발성이 강한 알코올은 조리 과정에서 날라 가기 때문에 식감엔 영향을 주지 않는다.

 전분 속 아밀로스가 끈기 더해 

메밀가루에 전분을 섞는 건 메밀에 끈기를 내는 성분이 없어서다. 그래서 메밀만으로 면을 뽑기는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하지만 녹말을 섞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녹말은 탄수화물 일종으로 다당류인 아밀로스와 아밀로펙틴이 결합돼 있다. 아밀로스는 포도당이 나선형으로 결합된 형태이고 아밀로펙틴은 나뭇가지 모양처럼 보다 복잡하게 얽혀 있다. 식물의 종류에 따라 둘의 비율이 다르다. 옥수수 전분은 아밀로스 함량이 25%, 아밀로펙틴 함량이 75%다. 감자 전분은 이 비율이 20대 80이다. 타피오카는 17대 83이다.

자연 상태 녹말은 분자가 규칙적으로 배열돼 있어 물 분자가 쉽게 들어가지 못한다. 하지만 뜨거운 물을 부으면 녹말이 물을 흡수하면서 녹말 입자가 부풀어 올라 녹말의 결정구조가 깨진다. 이 때 녹말 입자에서 아밀로스가 빠져 나오는데 이들이 서로 붙으면서 점성이 강해지고 끈적끈적해지게 된다. 이런 현상을 ‘호화’라고 한다. 끈기가 하나도 없는 메밀가루로 면을 뽑을 수 있는 건 뜨거운 물을 붓고 메밀가루와 전분을 반죽하는 과정에서 전분에 호화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함흥냉면 면발이 평양냉면보다 더 쫄깃쫄깃하고 질긴 건 녹말 비율이 높아서다. 함흥냉면은 감자 전분이나 고구마 전분으로 면을 뽑는다. 북한에선 함흥냉면을 ‘농마국수’라고 부를 정도다. 농마는 감자 전분을 말한다.

냉면 면발의 색깔이 어두운 데도 이유가 있다. 면의 식감을 살리기 위한 조치다. 메밀가루는 겉껍질을 벗긴 씨젖을 갈아 만든다. 겉껍질을 모두 벗겨내고 갈면 흰색, 겉껍질을 어느 정도 남겨 놓고 갈면 회색의 메밀가루가 나온다. 최 수석연구원은 “겉껍질을 다 벗겨 메밀가루를 만들면 꺼끌꺼끌함 등 냉면의 거친 식감이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평양냉면의 사촌은 막국수다. 둘 다 모두 메밀가루를 주요 원료로 쓴다. 평양냉면 면발엔 전분이, 막국수에는 밀가루가 들어간다는 게 다른 점이다. 밀가루에 전분을 섞는 밀면이나, 아예 밀가루로 면을 뽑는 쫄면은 냉면보다 더 쫄깃쫄깃하다. 굳이 따지자면 쫄면이 제일 질기다. 그 다음이 밀면, 함흥냉면, 평양냉면 순이다.

 밀가루 면이 쫄깃한 건 글루텐 때문 

녹말의 화학적 변화가 평양냉면 면발을 낳았듯, 밀가루의 화학적 변화도 식감을 결정하는 핵심역할을 한다. 밀가루의 원료가 되는 밀에는 글루테닌과 글리아딘이란 단백질이 들어 있다. 밀가루에 물을 넣고 반죽하면 평소 떨어져 있던 글루테닌과 글리아딘이 서로 결합, 그물 같은 구조를 갖는 단백질복합체 글루텐이 만들어진다. 밀가루 면이 쫄깃한 건 글루텐의 그물 구조 때문이다.

글루텐 함량에 따라 가공 용도도 달라진다. 글루텐 함량이 10~13%인 강력분은 반죽을 탄력 있고 만들어 주기 때문에 빵, 라면 등을 만드는데 쓰인다. 강력분의 강한 끈기는 빵을 구울 때 반죽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붙잡아 빵을 부풀어 오르게 한다. 중력분(글루텐 함량 9~10%)은 일반 면을 뽑는데, 박력분(글루텐 함량 9% 이하)은 과자나 케이크 등 부드러운 식감을 내는데 주로 사용된다.

밀가루 반죽할 때 바닥에 내리치는 것도 쫄깃함을 더하기 위해서다. 주무르고 내리치는 동작을 많이 할수록 물이 밀가루 사이사이에 골고루 퍼진다. 반죽 속의 공기도 빠져 나온다. 물과 밀가루가 더 잘 만날 수 있게 된다는 얘기다. 당연히 글루텐도 많이 형성된다. 밀가루 반죽을 할 때 소금을 첨가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소금은 글루텐의 그물 구조를 촘촘하게 당겨 탄성을 강화해준다. 반죽이 숙성하는 과정에서 유해 미생물의 번식을 막는 역할도 한다.

 평양냉면 면발 속 루틴, 혈관질환 위험 줄여 

쫄깃한 식감의 대표주자 글루텐을 바라보는 시선은 엇갈린다. 최근엔 글루텐이 포함되지 않은 글루텐프리 식품이 건강식품으로 인기를 얻고 있을 정도다. 글루텐은 밀가루를 먹은 뒤 설사나 구토를 하고 심할 경우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셀리악병의 유발인자로 알려졌다. 국내에선 드물지만 미국ㆍ유럽에선 113명당 1명 꼴로 셀리악병을 앓고 있다. 물론 글루텐이 함유된 밀가루가 과거 오랜 기간 동안 인류의 주식으로 자리잡아온 만큼 우려가 과장됐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반면 평양냉면에 주로 쓰이는 메밀은 건강식품으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메밀에 많이 함유된 루틴(비타민P)은 모세혈관 벽을 튼튼하게 해 뇌출혈과 고혈압, 동맥경화 등 혈관 질환의 위험성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 루틴은 물에 녹는 수용성 비타민이기 때문에 평양냉면 가게에서 냉면과 함께 나오는 면수(메밀국수를 삶은 물)를 많이 마실수록 몸에 좋다.

오늘은 꺼끌꺼끌한 면발에 희수무레하고 슴슴한 육수가 일품인 평양냉면 한 그릇 어떨까. 더위도 쫓고 건강도 위하는, 일석이조다.

변태섭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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