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일본식 의학용어’ 만연한 이유
“서혜관에서 촉지되는 연종괴가 탈장으로 의심됩니다. 감별진단 후 외과로 전과해서 수술 스케줄을 예약하겠습니다”
요즘 이렇게까지 환자가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환자상태를 설명하는 의사는 없지만 그래도 환자들은 의사들이 사용하는 의학용어를 이해를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위에서 언급한 환자 상태를 의사가 “사타구니(서혜관)에서 만져(촉지)지는 것(연종괴)이 바깥으로 튀어나온 창자 같습니다. 더 검사한 다음에 외과로 옮겨서 수술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하면 환자들은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대한해부학회와 대한의사협회가 해부학용어집과 의학용어집 등을 통해 이해하기 어려운 의학용어들을 순화시키고 있지만 아직도 임상에서는 일본식 의학용어가 통용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팔 부위에서는 상완(위팔), 전완(아래팔)이, 관절부위에서는 견관절(어깨관절), 주관절(팔꿉관절), 오골수근관절(손목관절), 고관절(엉덩이관절), 슬관절(무릎관절), 거퇴관절(발목관절) 등이 대표적이다.
코와 입 부위에서는 비강(코안), 구개(입천장), 구강(입안), 이하선(귀밑샘), 설하선(혀밑샘) 등 사용되고 있다. 그나마 소장(작은창자), 대장(큰창자)는 이해가 쉽지만 누선(눈물샘), 안검(눈꺼풀), 와우관(달팽이관) 등은 용어자체를 이해하기 힘들다.
의사들은 왜 환자가 이해하지 못하는 일본식 의학용어를 사용할까. 정민석 아주대 의과대학 해부학과교실 교수(대한의사협회 의학용어실무위원)는 “의대에서 고생하며 어렵게 익힌 옛 용어에 집착해 새 용어를 익히는 것을 귀찮아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정보비대칭 문제도 지적됐다. 정 교수는 “의사들이 일본식 용어에 집착하는 것은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를 강력히 반대했던 양반들처럼 자신들만이 정보를 독식 하고자 하는 것”이라며 “환자가 자기가 무슨 병인지 정확히 이해해야 의사를 믿고 치료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의학용어 하나라도 환자가 알기 쉽게 설명하는 것이 의사와 환자 사이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라고 덧붙였다.
김치중 기자 cj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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