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정상회담서 美 보란듯이 ‘북중 공조’ 대외 과시
시 “美 당근 내놓아라” 압박… 金 “中 경제발전 배울 것”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20일 정상회담은 교착상태에 빠진 비핵화 해법에 초점을 맞췄다. 시 주석이 중국 역할론을 부각시키자 김 위원장은 중국과의 소통을 강조하면서 혈맹간 공조를 통한 문제 해결이 중요하다고 화답했다.
◇비핵화, 중국 역할론 강조
시 주석이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을 지지한다”고 밝힌 것은 중국이 줄곧 강조해온 동시적ㆍ단계적 비핵화와 맞닿아 있다. 미국이 채찍만 휘두르지 말고 당근을 내놓으라는 것이다. 북한도 적극 호응하는 부분이다. 반면 미국은 ‘선(先) 비핵화, 후(後) 제재 완화’를 고수하며 맞서고 있다. 특히 지난 2월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 이후 북미 양측이 좀체 접점을 찾지 못하면서 중국은 존재감을 부각시키려 목소리를 높여왔다.
이에 시 주석은 한발 더 나아가 “북한이 안보 관심사를 해결하는데 중국은 힘이 닿는 한 돕겠다”며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생산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했다. 비핵화의 협상 테이블에는 미국과 북한이 나서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문제 해결의 열쇠는 중국이 쥐고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다. 특히 무역전쟁이 한창인 상황에서 북한을 미국을 향한 지렛대로 적극 활용하겠다는 의미도 담겼다.
아울러 “관련국들과 협력을 강화한다”며 북미 담판이 아닌 다자구도를 통한 접근을 강조했다. 중국은 2008년 12월 이후 중단된 6자회담 가동 당시 의장국으로서 9ㆍ19공동성명을 비롯한 합의를 이끌어낸 전례가 있다. 비핵화 과정에 어떻게든 발을 들여놓겠다는 것이다.
이에 김 위원장은 “지난 1년간 긴장 완화 조치를 했지만 적극적 반응을 못 얻었다”면서도 “조선은 인내심을 유지할 것”이라고 토로했다. 3차 북미 정상회담 재개 조건을 놓고 미국과 입장 차가 여전하지만 판을 깨지는 않겠다는 의미다. 대화국면이 틀어질 경우 미국이 싸잡아 비난의 화살을 겨눌 중국을 의식한 발언이기도 하다. 이와 함께 “중국과 소통해 새 진전을 거두겠다”며 중국의 역할을 적극 인정했다. 당장 28~29일 일본에서 열리는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날 시 주석에게 일종의 중재자로 나서달라는 의미로도 읽힌다.
◇북중 공조 과시, 미국 보고 있나
시 주석은 회담에서 “국제정세 변화에도 양국관계는 굳건하다”고 강조했다. 시 주석이 전날 북한 노동신문 기고를 통해 “전략적 의사소통과 교류를 강화하고 서로 배우면서 전통적인 중조 친선에 새로운 내용을 부여할 것”이라고 장담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중국 신화통신은 20일 회담 당일에도 “양국은 산과 물이 이어져 있는 이웃나라”라며 “높은 산과 끊임없이 멀리 흘러가는 물처럼 영원히 변치 않을 것”이라고 분위기를 띄웠다. 특히 북한을 향한 중국의 ‘3가지 불가론’을 제시하면서 “양국 관계를 계속 발전시키고, 북한 주민에 대한 우정을 유지하고, 사회주의국가 북한을 지지하는 중국과 중국 인민의 3가지 입장은 절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김 위원장은 “중국의 경제발전과 민생개선 경험을 배우겠다”며 한껏 자세를 낮췄다. 비핵화는 물론 경제문제에서도 중국의 역할을 강조한 것이다. 대북 지원을 비롯해 구체적인 경제 협력 사업의 성과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요구로도 볼 수 있다. 김 위원장은 신의주, 삼지연, 자강도 등 중국과의 접경지역에서 특구 중심의 개발 협력 프로젝트에 관심이 높다. 지난달 미국이 압류한 북한 선박 와이즈어니스트호 반환을 비롯해 갈수록 촘촘해지는 유엔 제재를 완화할 구체적인 방안도 오갔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 관영 CCTV는 회담 직후인 20일 저녁 이 같은 양 정상의 발언을 공개했다. 과거 북중 정상이 만나는 경우 일정이 모두 끝난 뒤에 회담 소식을 전하던 것에 비하면 이례적이다. 무엇보다 비핵화 관련 내용만 먼저 보따리를 풀었다. 시 주석과 트럼프 대통령의 회담을 1주일 앞두고 중국과 북한의 공조를 과시하면서 미국의 행동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신속하게 던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반면 북한 매체들은 이날 저녁 회담의 구체적 내용을 보도하지 않았다.
베이징=김광수 특파원 rollings@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