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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제도, 불완전한 인간이 만들었으니 불공정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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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제도, 불완전한 인간이 만들었으니 불공정할 수밖에

입력
2019.06.21 04:4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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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덤 벤포라도 ‘언페어’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지난해 4월 보습학원을 운영하던 이모(35) 원장은 10살짜리 초등학생을 자신의 집으로 유인해 술을 먹인 후 양손을 잡아 누르고 성폭행했다. ‘13세미만 미성년자 강간’ 혐의로 기소된 이씨는 1심에서 징역 8년을 선고 받았다. 13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에서 재판부는 1심을 깨고 이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1심 재판부가 이씨가 피해자의 몸을 누른 것을 폭행이라고 인정한 반면 2심 재판부는 폭행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판단은 피해 아동이 ‘그냥 손으로 누르기만 했냐’는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는 경찰조사에 근거했다.

경찰의 부실한 초동 수사, 현실과 괴리된 법과 양형 기준, 피해 아동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 법원의 태도에 여론은 경악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해당 판사 파면을 요구하는 청원이 올라왔고, 일주일도 안돼 10만명이 찬성 의사를 표시했다. 이들의 행동은 묻는다. 인권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인 사법제도는 정말로 공정하고 안전한가.

우리의 믿음과 기대를 저버리는 판결은 우리나라에서만 있는 일은 아니다. 미국의 변호사 출신 법대 교수가 쓴 ‘언페어(Unfair)’는 가장 공평하다고 믿는 사법제도가 어떻게 가장 비합리적이고, 오히려 불공정할 수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책이다. 중세시대 구마 의식에서부터 시작해 역사적인 판결 사례와 사건들을 과학적인 연구결과와 심리 조사 결과에 근거해 조목조목 문제점을 짚어낸다. 자신이 부모를 칼로 찔러 죽이지 않은 무고한 10대 소년은 장기간에 걸쳐 형사들로부터 집요하게 심문을 받으면 정말로 자신이 죽였다고 믿게 되는 일이 벌어진다. 피해자가 자신을 끔찍하게 강간한 범죄자가 속해 있는 용의자 사이에서 엉뚱한 사람을 범인으로 지목하는 오류도 생긴다.


언페어

애덤 벤포라도 지음ㆍ강혜정 옮김

세종 발행ㆍ480쪽ㆍ2만원

저자가 조사 도중에 마주친 이런 사례들은 상식으로는 납득하기 어렵다. 왜 이런 불합리한 오류들이 생기는지 파헤치는 과정을 따라 가다 보면 우리가 공고하게 믿어온 사법제도가 실은 매우 불완전한 인간들이 만든 불공정한 체제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저자는 피해자, 피의자, 배심원, 검사, 형사, 목격자 등 사건을 둘러싼 개인의 판단에는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인종과 출신, 경험 등에 의해 편견이 개입되고, 이해관계가 생기고, 심리상태가 작용하고, 정보 편향이 발생한다는 점을 과학적 조사결과를 들어 증명한다. 저자는 이같이 인간행동에 관한 부정확한 가정 아래에서 만들어진 사법제도는 그 자체로 불공평하다고 전제한다.

불공평한 잣대 위에서 내려지는 처벌 역시 정당치 못하다. 정의를 구현하고 안전한 사회를 위해 만들어진 양형 기준과 사형제도 등은 실은 복수하려는 본능의 힘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하며 저자는 우리의 상식을 다시 한번 뒤집는다. 범죄발생률을 줄이기 위해 사형이 있는 것이 아니라, 벌을 주기 위해 사형제도가 있다는 얘기다. 실제 사형제도가 범죄발생률을 줄이지 않는다는 데이터가 이를 반증한다.

저자는 허술하기 짝이 없는 사법제도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불완전하고 결함이 많은 인간 능력에 대한 의존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첨단 과학 기술을 활용해 인간의 판단이 개입할 수 있는 부분을 최소화하자는 얘기다. 저자는 우리가 믿고, 보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의심한다. 그럼에도 그는 결국 가족과 사회 안에서 사랑과 신뢰를 주고 받는 것만이 궁극적으로 이 사회가 발전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아이러니다.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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