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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의 매력, 사이보그 입장이 돼볼 수도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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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의 매력, 사이보그 입장이 돼볼 수도 있잖아요”

입력
2019.06.21 04:40
수정
2019.06.21 15:19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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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김초엽의 첫 책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국내 유일의 SF작가 신인상인 한국과학문학상은 2017년 2회 시상에서 작은 화젯거리를 냈다. 대상작 ‘관내분실’과 가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의 작가가 동일인물이었던 것. 최종 수상작이 선정될 때까지 모든 정보가 비공개로 진행되는 심사 덕에, 김초엽은 그해 SF팬들 사이에 가장 궁금한 이름이 됐다. 포스텍(포항공대)에 재학중인 25세 과학도라는 이력과 후천적 청각장애인이라는 사실 역시 질문과 이야깃거리가 이어지게 했다.

김초엽 작가의 첫 번째 책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 나왔다. 화제의 데뷔 이후 각종 지면에 성실하게 발표해온 작품을 엮은 결과물이다.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인 두 편을 제외하고는 데뷔 후에 새롭게 쓰인 것들이다. 묵혀둔 것 없이 새로 써낸 소설이 1년 간 다섯 편이나 된다는 점에서도, 김초엽은 확실히 지금 여기 한국 SF문학의 최전선이다.

망자의 기억을 컴퓨터에 저장하는 ‘마인드 업로딩’이 가능해진 시대, 도서관에서 사라진 어머니의 ‘마인드’를 찾아나서는 딸의 이야기(관내분실), 먼 우주의 가족을 만나기 위해 기약 없는 기다림을 이어가는 백일흔 살의 할머니 과학자(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수상작 두 편에서 알 수 있는 작가는 과학기술 자체보다 그 기술이 가져올 윤리적 문제나 인간의 정서를 더 중심에 둔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김초엽 지음

허블 발행ㆍ344쪽ㆍ1만 4,000원

작가는 내로라하는 스펙이 없다는 이유로 ‘실패한’ 것으로 여겨지는 여성 우주인(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 완벽한 유전자 선택이 가능해진 시대에 결함을 갖고 태어난 아이들(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등 미래에도 여전히 존재할 비주류와 비정상의 자리를 끈질기게 응시한다. 중학교 때 원인 불명으로 청력을 상실한 작가의 소수자 시선이 담겼다. 작가는 18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기술로 인해 세계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개인은 변화하는 세상에 어떻게 맞서는지, 그리고 기술은 결핍을 어떻게 해결하는지를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책의 추천사는 이례적으로 유명 순문학 작가인 김연수, 순문학과 장르문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정세랑 작가가 함께 썼다. ‘SF답지 않다’는 일부의 수식이 적합한지 여부를 떠나, 소설은 SF는 어렵고 난해하다는 막연한 두려움을 확실히 종식시킨다. 과학 지식이 기반이 되어야 이해할 수 있는 ‘하드SF’와 달리, 웜홀이나 우주여행 같은 단순한 과학상식을 다루되 따뜻한 시선과 문체로 풍성한 정서를 빚어낸다. 김연수 작가는 “명징하고 광대하게, 이 세계를 바로 볼 줄 아는 시선”으로, 정세랑 작가는 “읽는 사람을 울게 하고, 새로운 감각에 잠기게 하고, 나아가게 한다”는 평으로 이 신인작가가 만들어 낸 세계에 응원을 보냈다.

김초엽 작가. 허블 제공
김초엽 작가. 허블 제공

김 작가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포스텍에서 ‘유전자탐침을 이용한 바이오센서’를 만들던 대학원생이었다. 학부 전공은 화학이니 본격 과학도 출신 소설가라 할 수 있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으며 과학에 대한 관심을 키웠다는 작가에게, 창작과 과학공부는 별개의 일이 아니다. 김 작가는 “좋은 학교에서 애써 한 공부가 아깝지 않느냐”는 우문에 “늘 과학과 사회가 맺는 상호작용에 관심이 있었다”며 “소설의 쓸모가 사회적 공감의 영역을 확장시키는 데 있다면, 사이보그처럼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타자의 입장에도 처해보게 한다는 점에 SF의 매력이 있다”는 현답으로 응했다.

재미있고 쉽게 읽히면서도 새로운 감각을 남기는 소설을 쓰고 싶다는 김 작가는 장편소설을 집필 중이다. 앞으로도 쓸 것이 무궁무진한 SF작가의 미래와, 그가 그려낼 우리의 미래를 함께 기대해 봄직하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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