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그림일 뿐인데 직업 화가인 저도 깜짝 놀랄, 그런 ‘회화성’이 있더라고요.”
동물그림 등으로 유명한, 한국의 대표적 스타작가로 꼽히는 사석원이 20일 내놓은 고백이다. 지난해 전국의 지역아동센터(공부방) 아이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제4회 꿈 키움 문예 공모전’에서 사석원 작가는 그림 부문 심사위원으로 참가했다. 센터 252곳에서 응모한 시와 그림 1,571편 가운데 시 10편, 그림 10점을 뽑는 작업이었다. 발랄한 아이디어와 천진난만한 그림 스타일로 이름 얻은 사석원 작가 눈에도 독특한 창조성, 추상성이 도드라져 보였다.
‘생각의 탐험가상’을 받은 박하은(11)양의 그림 제목은 ‘내 머릿 속’이다. 원래 박양은 미래에 살고 싶은 집을 그리려 했다. 하지만 붓을 들자, 그 집을 상상하는 자신의 머리 속이 궁금해졌다. 그걸 그림으로 그렸다. 미지의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도화지 위쪽에 검은 큰 덩어리를 놓았고, 이제 자신의 호기심은 망원경으로 표현됐다.
시 부문에 응모한 심하나(12)양은 ‘반짝반짝 긍정상’을 받았다. ‘나는 하나다’란 제목의 시를 읽어보기만 해도 이유를 알 수 있다. “나는 하나다 / 내 이름은 하나다 / 별명이 많지만 난 내 이름이 좋다 / 왜냐하면 세상에 딱 하나밖에 없기 때문이다 / 이름이 흔하지만 그 중에서 나는 다른 사람이 아닌 나 자신의 하나가 좋다”
이 작품들이 특별한 건 아이들이 공부방 소속이어서다.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에게 방과후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부방은 또 하나의 가정이다. 아이들은 이곳에서 공부하고 놀며 상처와 결핍을 딛고 꿈을 찾아간다. 이지우(9)양이 출품한 시 제목은 ‘공부방 선생님은 천재’였다. 이양은 “공부방 선생님은 뭐든 다 잘 가르쳐주시고 친절하신 분들”이라며 웃었다. 이양의 꿈은 당연하게도 선생님이다.
이런 아이들에게 글쓰기, 그림 그리기는 그 자체가 치유다. 표현은 좀 서툴러도 한 꺼풀만 벗기면 어려운 형편의 그림자가 비친다. ‘나는 하나다’란 시도 그렇다. 심양은 “인터넷이나 책에서 본 좋은 글귀를 볼 때마다 나 자신에게 ‘괜찮다’라고 말할 수 있었다”며 “그러면 자존감도 높아지고 다른 사람과 비교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 작품들은 ‘꿈이 자라는 방’이라는 제목으로 지난 15일 출간됐다. CJ나눔재단이 후원했고 그 뜻에 공감한 출판사 샘터가 함께했다. 인세 수입은 교육지원사업에 쓰인다. 책을 내는 것도 좋은 경험이다. 수상에 실패했지만 작품집엔 시가 실린 임가은(9)양은 “내가 아닌 것 같다”며 활짝 웃었다.
사석원 작가는 이런 아이들을 응원하지 않을 수 없다 했다. “선생님도 일곱 살 때에야 말을 해서 공부가 뒤처졌어요. 교과서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 책에다 낙서를 하다 지금 화가가 된 것 같아요. 끝까지 희망을 놓지 말고 꿈을 키워 나갔으면 좋겠어요.” 훌륭한 화가도 어릴 적엔 책을 제대로 이해 못했다니, 아이들은 까르르 웃었다.
박진만 기자 bpb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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