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김없이 자살예방백서가 발간됐다. 보건복지부와 중앙자살예방센터가 우리나라의 자살과 자살예방과 관련된 사항들을 빠짐없이 수록한 소중한 자료다. 자살예방백서에 따르면 주요 자살 원인 중에 하나가 바로 우울증이다. 질환 상태가 악화되면 극단적인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의 상담과 치료가 필요하다.
상담과 치료의 중요성은 알겠는데 일반인이 정신과 병원 문을 열고 들어가기에는 아직도 사회적 편견과 불이익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나마 과거 정신과로 불렸던 진료과 명칭이 ‘건강’을 더해 정신건강의학과로 개정된 것은 다행이지만 말이다.
필자는 수년 전 극단적인 선택을 통해 세상을 등진 형제 때문에 정신적으로 큰 고통을 받았다. 당시 용기를 내 직장 인근에 있는 정신과를 찾았다. 막상 정신과에 가보니 일반병원과 큰 차이가 없었다. 소리가 나지 않는 TV, 잡지 몇 권이 배치돼 있었고, 대기실에서 환자들은 접수창구에 앉아 있는 간호사가 자기 이름을 부를 때까지 대기하고 있었다.
타인의 시선을 받기 부담스러울 텐데 진료실에서 진료를 받고 나온 환자들은 대기실에 앉아 있는 이들의 시선을 피할 수 없었다. 다행히 약을 복용하면서 치료를 잘 받고 세월이 흐르면서 슬픔의 무게가 줄어들었지만 다시 개인적인 어려움이 닥쳤을 때 정신과를 찾아갈 용기를 내기 쉽지 않을 듯하다. 일반병원도 마찬가지지만 대기실과 진료실 동선을 구분하거나, 환자 이름을 부르지 않고 대기번호로 진료순서를 알려줄 순 없을까. 용기를 내 마음의 병을 고치러 온 환자들을 배려하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마음의 병이 있어도 정신과를 쉽게 찾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는 정신과 치료 이력이 사회생활에 걸림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대학의 학생들을 상담하다 보면 학업과 취업과 관련해 힘들고 괴로워 정신과 치료를 받을까 생각했다가도 취직에 문제가 될까 겁이나 치료를 포기했다는 학생들이 적지 않았다. 여기에 정신질환자들은 실손보험 보장을 제대로 받을 수 없는 등 경제적 불이익이 존재하고 있는 것도 치료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우울증을 ‘마음의 감기’라고 말하는 것은 초기에 치료를 하면 증상이 호전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마음의 감기를 사회ㆍ경제적 이유로 치료하지 못해 상태가 악화되면 비극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사회ㆍ경제적으로 불이익을 당하지 않고 마음의 병을 치료할 수 있게 제도 보완이 시급하다. 마음의 병은 누구나 걸릴 수 있다. 우리 모두의 인식 개선도 필요하다.
유현재 서강대 지식융합미디어학부 교수(서강헬스커뮤니케이션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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