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스티븐 킹 ‘11/22/63’
※ 과학소설(SF)을 문학으로, 과학으로, 때로 사회로 읽고 소개하는 연재를 시작합니다. 지식큐레이터(YG와 JYP의 책걸상 팟캐스트 진행자) 강양구씨가 <한국일보>에 격주 금요일에 글을 씁니다.
1963년 11월 22일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가운데)이 텍사스주 댈러스 시내에서 암살당하기 직전 카 퍼레이드를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안중근 의사의 총탄에 이토 히로부미가 죽지 않았다면. 히틀러가 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했다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쿠데타가 실패로 돌아갔다면. 박정희 사후 전두환 대신 김재규가 권력을 잡았다면. ‘역사에 가정은 없다’며 역사학자가 지청구를 퍼부어도 이런 상상은 항상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다.

1963년 11월 22일은 어떨까. 이 날짜만 보고서 ‘케네디 대통령’을 떠올렸다면 20세기 현대사에 상당히 밝은 독자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바로 이날 리 하비 오즈월드의 총탄에 맞아 세상을 떴다. 미국 역사상 가장 매력적인 대통령의 암살 사건은 미국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에게 충격을 줬다.

1968년 형을 따라서 대통령에 도전하다 암살당한 동생(로버트 케네디)과 1999년 비행기 사고로 삶을 마무리한 아들(존 케네디 주니어) 가족의 비극까지 겹치면 꼭 미국인이 아니더라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래서일까. 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은 현대사의 여러 장면 가운데 곧잘 음모론의 소재로 쓰인다. ‘과연 오즈월드 단독 범행일까.’

이뿐만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그날 케네디 대통령이 총탄에 쓰러지지 않았다면, 미국 더 나아가 세계가 어떻게 바뀌었을지 상상한다. ‘케네디가 살았다면 21세기가 지금보다 훨씬 더 나아지지 않았을까.’ ‘11/22/63’은 바로 이런 질문에 ‘세계 최고의 이야기꾼’ 스티븐 킹(71)이 답해본 소설이다.

스티븐 킹. 한국일보 자료사진

고등학교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서른다섯 살의 교사 제이크. 그는 우연히 1958년의 어떤 날로 이동하는 시간 여행 통로를 접한다. 그에게 이 신비한 통로를 알려준 친구는 케네디 대통령 암살을 저지하라는 사명을 일러주고 불치병으로 숨을 거둔다. “제이크, 자네가 역사를 바꿀 수 있어. 알겠나? 존 케네디를 살릴 수 있다고.”

21세기의 지식인 제이크는 ‘나비 효과’를 안다. 어쭙잖게 과거를 개입했을 때, 의도하지 않았던 최악의 미래가 나타날 수 있다. 아무런 도움 없이 혼자서 과거로 돌아가서 대통령을 상대로 한 테러를 막는 일이 쉬울 리도 없다. 하지만 시험 삼아 해본 과거 바꾸기의 좋은 결과를 보면서 그는 마음먹는다. ‘그래, 케네디를 구하자.’

사실 지금 ‘11/22/63’을 권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이 소설은 최근 몇 년간 읽은 가장 달달한 사랑 이야기다. 주인공이 케네디 암살 사건을 막느라 고군분투하는 이야기에 로맨스라고? 그렇다. 과거로 돌아가서 (케네디를 구할 준비를 하면서) 한 시골 학교의 문학 교사로 취직한 제이크는 그곳에서 운명의 사랑을 만난다.

시간 여행에서 사랑 이야기는 식상한 소재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섬세하고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이전에 본 적이 없다. 킹은 공포 소설만 잘 썼던 게 아니었다. 인간의 마음을 오싹하게 했던 작가의 재주가 사랑의 감정이 고양되며 마음을 흔드는 데에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11/22/63
스티븐 킹 지음ㆍ이은선 옮김
황금가지 발행ㆍ512쪽ㆍ1만3,500원

눈을 돌릴 수 없는 재미도 주면서, 책장을 덮고 나면 마음 따뜻해지는 사랑 이야기까지 원하는 사람이라면 이번 여름휴가 때 주저 없이 ‘11/22/63’을 읽어야 한다. 몇 년 전 집으로 오는 광역 버스 안에서 이 책의 마지막을 읽다가 속절없이 눈물이 쏟아져서 여러 사람의 눈총을 받았던 일을 쑥스럽지만 고백한다.

그나저나, 과거로 돌아간 제이크는 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을 무사히 막아냈을까. 만약에 그가 케네디 암살을 막았다면, 21세기는 어떻게 되었을까. 정말로 세상은 좀 더 나아졌을까. 결정적으로, 시간 여행자의 사랑은 해피엔딩일까. 아! 이런 이야기를 생각해내는 킹이 오래오래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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