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함평의 시골마을 노인이 평생 모아왔던 노후자금 1억4000여 만원을 전화금융사기범에게 속아 날릴 뻔 했으나 금융기관 직원의 기지로 위기를 모면했다.
20일 함평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7일 오전 11시40분께 함평읍에서 혼자 거주하는 A(85·여)씨가 함평신협에 찾아와 정기예금 9000만원을 현금으로 인출해달라고 요구했다.
정기예금을 중도 해지하는 것도 모자라 시골노인이 거액인 9000만원을 현금으로 인출한다는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어서 함평신협 최한순(42·여) 지점장이 A씨에게 접근했다.
"할머니 급한 일 있으세요. 무슨 일이시길래 정기예금을 해약하고 현금으로 인출하세요?"
A씨는 "부동산 매매대금이다"고 짧게 대답한 뒤 계속 인출을 요구했다.
보이스피싱을 직감한 최 지점장은 "할머니, 부동산 매매대금은 요새 현금으로 주지않고 대부분 계좌로 이체해요. 큰 돈을 인출하면 위험하니 상대방 계좌번호를 알려달라고 하세요"라고 말하며 물러서지 않았다.
A씨는 "계좌가 없다고 하는데…"라고 말끝을 흐리며 지점 밖으로 나가 통화를 하다가 다시 들어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집에 있는데 금융감독원 직원한테 전화가 왔더라고. 계좌가 불법이니 현금으로 찾아서 집 냉장고에 보관하라고. 은행 직원이 물어보면 부동산 매매대금이라고…"
A씨의 말이 끝나기 전에 최 지점장은 보이스피싱 사기범이라고 설명한 뒤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A씨는 사기범에 속아 함평신협에 오기 전에 다른 은행에서 이미 예금 5000만원을 찾은 상태였다.
함평신협 최 지점장의 눈썰미가 아니었다면 평생 모아왔던 노후자금 1억4000만원을 한 순간에 날릴 뻔한 상황이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혹시나 냉장고 속 돈을 가지러 범인이 나타날 것을 대비해 A씨의 집에서 잠복했으나 낌새를 챘는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최 지점장은 3년 전에도 보이스피싱 사기범에게 3000만원을 보내려던 예금주를 막아 피해를 예방했었다.
함평경찰은 최 지점장에게 감사장을 전달했다.
함평경찰서 류미진 서장은 "어르신의 수상한 행동을 관찰하며 보이스피싱을 막은 최 지점장은 경찰제복을 입은 시민과 같다"고 말했다.
최 지점장은 "A씨의 행동은 조금만 관심을 갖고 보면 누구라도 이상하게 여겼을 것이다"며 "고객의 불편함이 없는지 관찰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할 업무다"고 말했다.
뉴시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