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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기업 2.0] 가전수리로 세상을 빛내는 ‘인라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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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기업 2.0] 가전수리로 세상을 빛내는 ‘인라이튼’

입력
2019.06.24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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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용 인라이튼 대표가 11일 서울 성동구에 위치한 인라이튼 작업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2019-06-11(한국일보)
신기용 인라이튼 대표가 11일 서울 성동구에 위치한 인라이튼 작업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2019-06-11(한국일보)

4,850만톤. 지난해 전세계에서 폐기된 전자제품의 양이다. 첨단 가전기기가 급증하면서 2050년까지 매년 약 5,000만톤의 전자제품 폐기물이 쏟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가전제품이 생산되고 폐기되는 과정에서 지구 온난화를 일으키는 막대한 양의 이산화탄소가 발생한다. 무선청소기 1대가 발생시키는 이산화탄소는 무려 65㎏에 달한다. 소나무 11그루가 1년 동안 흡수해야 하는 양이다. 가전제품의 수명을 연장시키는 방법으로 환경오염의 악순환을 끊으려는 기업이 있다. ‘세상을 밝히겠다’는 뜻을 지닌 국내 사회적기업 인라이튼(Enlighten)이다. 지난 11일 서울 성동구 서울새활용플라자 인라이튼 사무실에서 만난 신기용 인라이튼 대표는 “지금은 전자제품이 생산되고 폐기되는 선형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가전제품을 수리해 더 오래 가는 세상을 만들자는 게 우리의 목표”라고 설명했다.

가전제품 수리로 환경 살리는 인라이튼

‘되살린 제품 2만291개, 이산화탄소 절감량(나무 심은 효과) 17만8,054그루.’ 100평 남짓의 인라이튼 작업실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띈 표지판이다. 가전제품 수리를 통해 환경보호에 기여한 정도를 나타낸 수치가 적혔다. 신 대표는 “인라이튼은 간단하게는 전자제품 수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라며 “우리의 목표는 이를 통해 에너지 공급과 환경오염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다”고 말했다. 인라이튼 작업실 입구에는 고객들이 수리를 위해 택배로 보낸 전자제품 80여개가 벽면 한 쪽을 가득 채울 정도로 쌓여 있었다. 모두 당일 배송된 제품들로 구식 프린터부터 무선청소기까지 다양했다.

신 대표가 인라이튼을 창업한 것은 디자인에 대한 남다른 신념 때문이었다. 그는 대학에서 디자인과 공학을 전공했다. “제품이 빨리 소비되도록 고객들을 유혹하는 게 아닌, 함께 상생하도록 하는 지속가능한 디자인이 좋은 디자인이다.” 졸업 작품으로 ‘유니버설 디자인(장애 유무나 연령에 관계 없이 누구나 쓸 수 있도록 하는 디자인)’을 적용한 재활치료용 자전거를 개발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이후 전세계의 에너지 불균형 문제에 주목했고, 아프리카에 보낼 태양광 램프용 배터리 개발에 나섰다. 결국 2013년 소셜벤처 경연대회에서 ‘병렬연결식 모듈형 태양광램프’로 최우수상을 받았다. 그는 그 길로 학교를 나와 인라이튼을 만들었다.

그는 인라이튼 창업 초기 배터리 문제에 집중했다. 배터리 수명이 다했다는 이유 만으로 멀쩡한 전자제품들이 버려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무선 가전제품은 1년쯤 지나면 배터리를 교체해야 하는데, 교체 비용이 제품 가격의 절반에 달해 아예 새 제품을 구매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식으로 버려지는 가전제품이 서울에서만 매년 4,000톤에 달했다. 그는 배터리 교체 수리비를 일반 서비스센터에서 받는 비용보다 30% 저렴하게 책정해 서비스에 나섰다. 해외직구를 통해 구입한 가전제품의 경우 수리를 맡길 곳이 없어 고민하던 소비자들 사이에 입소문이 나면서, 수리 요청 주문이 쏟아졌다. 30평 넓이에 3명으로 시작했던 작업실은 최근 100평, 16명의 직원이 일하는 곳으로 커졌다. 신 대표는 “우리가 가전제품 한 개를 살릴 때마다 그 만큼 환경이 보호된다는 사실에 직원들이 큰 보람을 느끼고 있다”며 “연 매출도 매년 2배씩 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11일 서울 성동구 인라이튼 작업실에서 직원들이 가전제품을 수리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11일 서울 성동구 인라이튼 작업실에서 직원들이 가전제품을 수리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사회적기업 인라이튼 사무실에서 직원들이 수리 요청이 들어온 가전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사회적기업 인라이튼 사무실에서 직원들이 수리 요청이 들어온 가전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누구나 믿고 맡길 수 있는 수리 서비스

인라이튼은 현재 배터리 교체를 넘어 가전제품 자체를 수리하는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한 해 500만개가 넘는 해외 직구 가전제품이 국내로 들어오는데 이걸 수리하고 유지 보수하는 시스템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신 대표는 “예전에는 동네마다 가전제품 수리를 믿고 맡길 수 있는 전파사들이 하나씩은 있었는데, 지금은 이런 인프라가 붕괴되면서 수리 분야는 소비자 입장에선 잘 알지 못하면 바가지를 쓸 수 있는 두렵고 어려운 영역으로 변했다”고 말했다. 수리 내역에 불만이 있어도 고객들이 제대로 따지기 힘든데다, 비용도 제 각각이어서 불만이 높다는 것이다.

이에 신 대표는 “누구나 믿고 맡길 수 있는 수리 서비스”를 회사 모토로 내세웠다. 그리고 수리를 위해 각 가전제품 회로에 대한 분석에 들어갔다. 고가인 다이슨 무선청소기 같은 제품은 회로도를 분석하는데만 몇 개월이 걸리기도 했다. 현재 인라이튼이 수리할 수 있는 제품은 450여종에 이른다. 인라이튼은 최소한의 부품 교체 방식을 통해 소비자들이 과도한 부담을 떠안지 않도록 하고 있다. 신 대표는 “모터가 고장난 청소기를 열어보면 회로 소자 1개가 나간 경우가 많고 그 소자의 원가는 2~3원 수준”이라며 “일반 서비스센터에서는 이럴 경우 모터를 통째로 바꿔 25만원을 청구하지만, 우리는 소자만 바꾸는 방식으로 수리해 추가로 공임비만 받고 있다”고 말했다.

소비자들이 새 가전제품을 사는 대신 수리를 선택하도록 유도해야 더 많은 가전제품을 재활용할 수 있다고 신 대표는 생각한다. 이를 위해 인라이튼에 대한 소비자의 접근성을 높이는데 주력하고 있다. 그래서 오프라인 중심의 수리 서비스를 온라인으로 옮겼다. 고객이 직접 찾아가서 제품을 맡기는 수리가 아니라, 홈페이지에 신청만 하면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홈페이지에 제품 모델명을 입력하면 서비스 이용료를 확인할 수 있다. 고객 집으로 제품 크기에 맞는 포장용 상자와 완충제를 보낸 뒤, 고객이 수리할 제품을 상자에 담으면 직접 가져가는 시스템이다. 또 수리 과정을 사진으로 촬영해 빠짐없이 고객에게 보내준다. 사설 수리업체에서 겪었던 고객들의 불안을 최소화하려는 것이다.

신 대표는 “지금은 개인 고객을 대상으로 수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일반 제조사나 글로벌 해외 제조사, 유통사 등을 대상으로 전문 위탁 수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사업을 확장하려고 한다”며 “그러면 기업들도 제품을 단순히 판매하고 끝나는 구조에서 탈피해 지속가능한 유통 모델을 만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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