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협객 영화 전성시대
※ 한국영화가 탄생 100년을 맞았습니다. <한국일보>는 영화만큼 재미있는 한국영화 100년의 이야기를 영화전문가들을 통해 매주 토요일 들려드립니다.
김두한의 삶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팔도 사나이'(1969). 김두한의 실명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김두한 영화 붐을 이끄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격동기를 사는 사람들은 영웅을 갈망한다. 그리고 대중의 영웅은 무인(武人)의 모습으로 나타나 숱한 무용담과 일화들을 남기곤 한다. 살아감에 있어 거칠 것이 없는 풍운아, 싸움꾼의 일생을 통해 소시민들은 억압받는 현실 앞에서의 무력감을 보상받는다. 이러한 무용담의 주인공들은 홍길동이나 임꺽정에서 최배달에 이르기까지 당대의 시대상과 조응하며 대중의 낭만을 한몸에 응집한 존재로 이상화되기 마련이다. 김두한(1918~1972)의 경우가 그러했다. 그의 주먹패 인생과 정치 행보는 일제강점기와 해방 정국을 거쳐 군부 독재의 유신정권에 이르는 암울한 시대상을 관통하고 있으며, 청산리 전투의 주역인 독립운동가 김좌진의 서자라는 출신 배경은 영웅 설화의 모티브가 되기 충분한 소재였다.

◇허구 위에 세워진 ‘주먹 신화’

그러나 항일 주먹이라는 대중적 이미지와 김두한의 실제 행보는 이질적이다 싶을 만큼 괴리가 크다. 윗세대 건달인 구마적을 이기고 경성의 주먹 황제가 되었다는 것도 실상은 김두한이 구마적의 수하로 들어간 것이라는 설이 있을 만큼 사실관계가 불분명하며, 일본 폭력조직 야쿠자와의 대립은 항일 운동이 아닌 단순한 조직 폭력배 간의 영역 분쟁이었다. 김두한과 교유한 마루오카 경부는 실제 총독부 인사 기록에선 찾아볼 수 없는 가공의 인물에 가깝다. 김두한의 숙적으로 알려진 미와 와사부로 경부는 김두한의 종로 시절에는 함경도에서 근무했다가 퇴임했다. 해방 이후 자결한 것으로 언급되지만 1968년 조선일보 기자 김을한에게 연하장을 보낼 때까지 생존해 있던 것으로 여겨진다. 헌병대 대위 두 명을 두들겨 패고 레슬링 선수 황병관을 구해 줬다는 일화 또한 당시 시대상이나 해방 이후 김두한을 폄하한 황병관의 인터뷰 발언 등을 고려해 보면 거짓일 가능성이 크다. 도리어 김두한의 강점기 행적에는 1943년 반도의용정신대를 조직해 일제의 전시 체제에 협력한 혐의가 있다. 다만 김좌진의 친아들이며 종로를 기반으로 상인들로부터 세를 받아먹던 주먹패의 실력자였다는 건 사실이다.

1963년 자서전 ‘피로 물들인 건국 전야’를 집필해 출간한 김두한은 6년 뒤인 1969년 동아방송 라디오 프로그램 ‘노변야화’에 출연해 자신의 인생 역정을 회고한다. 이 시점이면 김두한의 과거 행적에 관해 증언을 남길 만한 인물인 김기환과 김무옥, 황병관, 구마적 등은 모두 고인이 되거나 은퇴 후 행적이 묘연해져 김두한의 1930년대 행적에 대한 교차 검증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절반 이상은 과장과 허풍, 미화와 윤색이 대거 가해진 무협지에 가까운 자서전과 라디오 방송이 대중적으로 널리 퍼져 김두한 인생 스토리의 원형이 되었다. 자서전과 라디오 출연은 굉장한 반향을 일으켜 김두한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환기시켰고, 김두한 출연 라디오 방송은 꾸준한 인기를 끌며 이듬해까지 84회에 걸쳐 방송된다. 훗날 드라마 ‘야인시대’에 이르기까지 무수히 양산되는 김두한 관련 창작물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영화 '실록 김두한'(1974). 김두한의 실명을 활용한 첫 영화로 이대근(왼쪽)을 스타덤에 올려놓았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시류 편승한 아류작 쏟아져

‘주먹으로 일세를 풍미한 사내’의 이야기는 당장 영화 제작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김두한의 회고담에서 모티브를 얻은 김효천 감독, 장동휘ㆍ박노식 주연의 ‘팔도 사나이’(1969)는 서울 관객 10만명이 넘는 흥행을 기록하며 협객물의 유행을 선도한다. 이 시점에서는 김두한 본인이 살아 있었을 뿐 아니라 엄연한 현역 정치인이었기 때문에 본명을 쓸 수는 없었지만, 이 영화가 김두한 관련 영화의 시발점임은 부인할 수는 없다. 생전의 김두한이 영화를 보고 흡족해하며 ‘나의 반생을 그린 영화’로 공인했다고 한다. 1972년 11월 21일, 김두한 본인이 오랜 지병이던 고혈압으로 세상을 떠나자, 김두한 이름을 활용한 영화 제작을 가로막는 마지막 장벽이 사라진다. 얼마 지나지 않아 김효천 감독은 ‘실록 김두한’(1974)을 발표하며 본격적인 김두한 영화의 유행에 불을 댕긴다. 김두한의 출생과 성장, 신마적과의 대결을 거쳐 야쿠자 야마구치와의 결투에 이르는 여정을 그린 이 영화는 무명 배우였던 이대근을 일거에 충무로의 스타로 발돋움시켰으며 정장에 중절모, 가죽장갑 차림을 한 모습의 협객이라는 장르의 클리셰를 빚어냈다. 이쯤부터 영화는 이미 실제 김두한의 인생과는 한참 동떨어진 창작물이 되어 있었다. 김두한에 대한 영웅적 미화의 시초 격인 이 영화의 대대적인 성공으로 ‘협객 김두한’(1975), 해방 이후 정치 깡패로서의 행적을 반공주의적 관점에서 각색하고 찬양한 고영남 감독의 ‘김두한 제3부 폭탄열차편’(1975), ‘김두한 제 4부’(1975)와 같은 후속작이 쏟아졌다. 스핀오프 격으로 김두한 주변부 인물을 내세운 ‘거지왕 김춘삼’(1975)과 같은 유사 작품들도 이어졌다. 검열 당국의 입장에서도 김두한 영화는 항일과 반공이라는 국시에 부합되는 것이었기에 별 다른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영화 '김두한 형 시라소니 형'(1981). 한국일보 자료사진
SBS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김두한(안재모)이 활극을 펼치고 있다. SBS 제공
◇항일과 반공 담은 저예산 액션의 주류

협객물은 일시적으로 침체기를 맞았다가 이혁수 감독, 이대근 주연의 ‘협객 시라소니’(1979), 당대 최고의 스타 신성일이 주연한 ‘협객 시라소니 파트 2’(1980) 등 김두한과 동시대를 살았던 주변 인물에 관한 영화가 속속 만들어지면서 다시 유행한다. 영화사 동협상사를 차려 연출에서 손을 떼고 제작자로 일하던 김효천 감독도 ‘김두한형 시라소니형’(1981)으로 복귀한다. 서로의 의협심을 알아보고 일치단결한 김두한과 시라소니(이성순)가 야쿠자 50명을 때려잡는다는 이 영화는 전년에 흥행한 ‘협객 시라소니’의 인기를 등에 업고 만들어진 것이다. 달리 풀어서 말하자면 홍콩 영화 ‘외팔이와 맹협’(1971)이나 ‘첩혈쌍웅’(1989)처럼 당대의 인기 배우, 캐릭터 둘을 한데 엮자는 상업적 기획의 산물이었다. ‘김두한형 시라소니형’은 정치 깡패 유지광의 자서전 ‘대명’과 더불어 후대에 김두한과 시라소니를 의형제 같은 관계로 묶어서 인식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같은 해, 이혁수 감독은 ‘김두한과 서대문 1번지’를 내놓는다. 동협상사에서 ‘김두한형 시라소니형’과 동시에 제작한 이 영화는 상영 기간에 약간의 간격을 두고자 두 달 늦게 극장에 걸린다. 노골적인 반공 영화의 색채가 농후한 작품으로 공산당 세력이 형무소 내에서 서울 시내 경찰서에 대한 테러를 획책하자 김두한이 이를 저지하고자 분투하는 내용이었다. 조병옥과 장택상이 김두한을 돕고자 하는 움직임을 보인다거나, 미군 형무소에 수감된 김두한이 미군과 권투 시합을 벌이는 장면 등은 훗날 드라마 ‘야인시대’ 2부의 원형을 제공하기도 했다. 여운형을 매국노로 폄하, 왜곡하고 그를 암살한 인물을 애국자로 칭하는 등 김두한 관련 창작물의 우익적 색채를 가장 극단적으로 보여 주는 영화다. 이때까지만 해도 김두한을 소재로 한 액션 영화들은 모두 저예산에 급조해서 날림으로 찍어낸 B급 장르물에 지나지 않았다. 항일과 반공의 색채를 입힌 이데올로기 선전물의 성격이 짙었으며 인물에 대한 해석의 깊이가 없고 이야기의 사실성이 떨어지며 액션의 짜임새도 없었다. 만듦새의 측면에서 평가하자면 실로 처참한 수준이었다. 누가 보아도 김두한이란 저명 인사의 이름만 빌려서 마구잡이로 지어낸 망상이란 걸 구분할 수 있었다.

이러한 김두한 관련 창작물에 새로운 전환점이 된 건 백파 홍성유의 소설 ‘인생극장’이었다 1985년에서 1988년까지 조선일보에 연재된 이 신문 소설은 자서전과 회고를 토대로 하되 세밀한 자료 조사를 덧대었다. 피상적으로만 다루어져 왔던 김두한의 적과 주변 인물들, 여성 관계를 보다 입체적이고 생생한 묘사를 통해 소개했다. 오늘날 널리 알려진 김두한 이야기의 틀은 홍성유의 소설에 이르러서야 탄탄히 정립됐다.

항일과 반공 기조에 입각해 애국자로 미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소설의 기본적인 토대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홍성유는 싸구려 오락물의 소재로밖에 취급되지 않았던 김두한의 이야기에 보다 진지하게 접근하고자 했다. 시대상에 대한 고증, 취재를 통해 수집한 정치 깡패들에 대한 일화를 접목하면서, 김두한을 황당무계한 액션물의 주인공이 아니라 시대 속에 살아 숨 쉬는 역사적 인물로서 생동감과 깊이를 부여하고자 했다. 이 시점에 와서야 김두한의 이야기는 어느 정도 대하 서사시로서의 품격을 얻게 된 것이다. ‘인생극장’은 연재가 완료된 뒤 고려원 출판사에서 8권의 단행본으로 출간된다. 그리고 이때 출판사에서 독자 공모를 하면서 소설은 새로운 제목을 얻게 된다. 바로 ‘장군의 아들’이었다.

조재휘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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