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강제징용 해법’ 제안 배경… “日, 기업 참여 용인 안 할 것 뻔해” 명분 쌓기용 해석도
지난해 11월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와 가족들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승소한 뒤 기자회견을 하면서 만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한일 기업들이 낸 돈으로 승소한 강제징용 피해 배상 소송 원고들에게 줄 위자료를 마련하자고 정부가 일본 측에 제안한 건 지난해 10월 한국 대법원 판결 뒤 악화일로인 한일관계 개선의 실마리를 어떻게든 찾아보자는 취지에서다. 임박한(28~29일) 오사카(大阪)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때 한일 정상회담이 성사되게 하기 위해서라도 지금쯤이면 성의를 보여야 한다는 판단을 정부가 했으리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피해자와 한일 기업들의 의견을 제대로 듣지 않은 데다 공감대가 없는 상태에서 일본 측이 여간해서는 수용하지 않을 법한 카드를 던졌다는 점에서 관계 개선 의지보다 명분만 쌓겠다는 심산이 더 크지 않았냐는 해석도 나온다.

정부안은 조세영 외교부 제1차관이 지난 주말 일본을 비공개 방문해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는데, 시점이 공교롭다. 우선 분쟁 해결을 위한 중재위원회를 구성하자는 일본 정부 요구에 우리 정부가 답변해줘야 하는 한일 청구권 협정상 시한(구성 요청 이후 30일 이내)이 18일이었다. 또 청와대가 한일 정상회담의 계기로 삼고 있는 오사카 G20 정상회의를 2주가량 앞두고 있었다. 이원덕 국민대 교수는 19일 “동북아에서 강대국 간 파워 게임이 벌어지는데 계속 방치했다가는 양국이 협조는커녕 경제 보복ㆍ대응전(戰)을 벌일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이 팽배한 상황에서 정부가 유연성을 발휘해 중요한 결단을 내렸다”며 “한일 정상회담 무산 가능성도 정부의 태도 전향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이 틀어진 마당에 핑계거리나 만들어놓자는 계산일지 모른다는 의심도 제기된다. 정부 방안을 일본 정부가 수용하기가 쉽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일본 기업의 돈이 들어가는 거나 재단 구성에서 한국 정부가 빠지는 상황을 일본 정부가 용인할 리 없는 데다 반년 전 자국이 요구한 양자 협의를 한국 정부가 이제서야 검토하겠다고 나선 것도 무성의하다고 여기리라는 게 비관론의 근거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일본이 방안을 수용하지 않으리라는 걸 정부는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일부에서는 이달 말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한일관계 정상화를 촉구하는 미국을 상대로 ‘우리도 고민하고 있다’고 시위하기 위해서였을 거라는 주장도 나온다.

난제는 수두룩하다. 우선 징용 피해자 간 형평성이다. 위자료는 확정 판결로 승소한 피해자들(지금까지 14명)에게만 지급된다. 외교부는 일단 제소하지 않은 피해자의 경우 별도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피해자 범위가 워낙 광범해 모두 구제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예상대로 피해자들은 불만이다. 소송대리인단과 지원단은 이날 낸 입장에서 “강제동원 문제 해결의 출발점인 ‘역사적 사실 인정’과 ‘사과’에 대해 아무 내용이 없다는 점에서 정부안은 문제”라며 “한국 정부가 피해자 측 의견 수렴을 위한 공식 절차를 밟지도 않았다”고 지적했다.

일본 정부가 수용할 가능성도 희박하다.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는 해결됐다는 게 일본 정부 입장이다. 또 기업들이 참여할지도 미지수다. 대상 기업으로는 청구권 자금 혜택을 받은 포스코와 한국도로공사, 한국전력공사등 한국 공기업과 일본제철ㆍ미쓰비시중공업 등 패소한 일본 기업이 거론되는데, 방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정부가 이들과 접촉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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