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0억 상당 예산 투입, 국제기구 통한 우회 지원
정부가 세계식량계획(WFP)을 통해 국내산 쌀 5만 톤을 북한에 지원한다. 대북 쌀 지원은 2010년 이후 9년 만이고, 국제기구를 통한 국내산 쌀 지원은 사상 처음이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어 “북한의 식량 상황을 고려해 그간 세계식량계획(WFP)과 긴밀히 협의한 결과 우선 쌀 5만 톤을 지원하기로 했다”며 “지원 식량이 북한 주민에게 최대한 신속히 전달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쌀은 해로를 통해 전달될 예정이며, 운송 경로 협의 등 실무 절차를 거쳐 이르면 9월 안에 북한에 전달될 전망이다.
쌀 지원에 투입되는 정부 예산은 1,270억원 정도다. 김 장관은 ‘국내산 쌀이 국제 쌀 가격 기준인 태국산보다 5배 가량 비싸다’는 점을 언급하며 “(태국 쌀 가격을 적용했을 때 드는 비용인) 270억원은 남북협력기금에서 나가고, (국내 쌀을 기준으로 했을 때의 차액인) 1,000억원은 양곡관리특별회계에서 가격보존 방식으로 지출된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대북 직접 지원이 아닌 간접 지원 방식을 택한 데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후 북한과의 소통이 원활하지 않았던 점이 영향을 미친 듯 하다. 김 장관은 ‘북한과의 협의가 진행됐는가’라는 질문에 “정부와 WFP, WFP와 북한 간 삼각 대화를 해왔다”고 말했다. 대북 제재가 유지되고 있는 만큼 현물을 직접 전달하는 것도 부담스러웠을 법 하다. 통일부는 보도자료에서 “북한 ‘당국’에 대한 지원이 아니며 일상의 삶 자체가 위협을 받고 있는 북한 ‘주민’들에 대한 지원이라는 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북한에 도착하는 쌀이 누구에게, 어떻게 분배될지는 북한과 WFP가 결정하게 된다. 쌀이 군사 용으로 전용될 수 있다는 우려와 관련해 김 장관은 “벼를 쌀로 도정하면 여름철엔 두세 달 정도, 일반적으론 6개월 이내에 소비돼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도정된 쌀이 전용되거나 비축되긴 어려울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정부는 모니터링을 위해 북한으로 보내는 쌀 포대에 ‘대한민국’을 명기할 방침이다.
정부는 추가 지원 가능성도 열어놨다. 김 장관은 “추가 식량 지원의 시기와 규모는 이번 지원 결과 등을 봐 가며 결정할 것”이라며 “북한의 식량 사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하겠다”고 말했다. 지난달 한미 정상의 전화통화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대북 식량 지원을 지지한 바 있다.
북한에 지원되는 쌀은 2017년 산이다. 정부 비축미여서 국내 쌀 가격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고 정부는 설명했다. 올해 4월 말 기준으로 정부 양곡 재고량은 122만톤으로, 적정 재고 수준인 70~80만톤을 상회한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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