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정부가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을 둘러싼 한국 정부의 대안 제시를 일언지하에 거절한 것은 기존의 강경한 태도를 고수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제3국을 포함한 중재위원회 설치 요구를 관철하겠다는 의도도 내비쳤다.
오스가 다케시(大菅岳史) 일본 외무성 보도관은 19일 기자회견에서 한일 기업이 자발적으로 재원을 출연해 피해자에게 위자료를 지급하는 방안에 대해 “국제법 위반 상태를 시정하는 것이 될 수 없어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며 “한국 정부에 중재에 응할 것을 요구하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했다. 고노 다로(河野太郎) 외무장관은 이후 취재진에게 “한국 정부가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을 해주는 것은 고맙지만, 한일 양국 간 법적 기반을 손상하지 않는 방안을 확실히 제시하길 바란다”고 했다. 일본 정부는 이날 오전 제3국을 포함한 중재위 개최를 요구한 만큼 민간을 중심으로 외교적 해결을 바라는 한국 측 제안을 수용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일본의 강경한 대응은 예견된 바다. 지난해 대법원 판결에 대해 “1965년 국교정상화 당시 체결한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이미 해결된 문제”라며 “이를 뒤집는 것은 국제법 위반”이라고 주장해 왔다. 또 한국에서 강제징용 배상소송에 제소된 자국 기업들에게 배상이나 화해에 응하지 말 것을 요청했다.
이는 대법원 판결이 일본의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고 있어서다. 일본 정부는 한국에 대한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어 그 과정에서 발생한 징용피해에 대한 위자료를 지급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한일 청구권 협정에서 유ㆍ무상 총 5억달러의 지원 자금으로 청구권 문제는 해결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정부 차원의 강제 없이 양국 민간 차원의 문제 해결을 모색한 것도 이 때문이다. 2012년 일본제철(당시 신일본제철) 주주총회에선 “(대법원) 판결을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나온 바 있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대법원 판결 이후 정부 대응상황에 입각해 대응하겠다는 입장으로 바뀌었다. 현 상황에서 일본 기업들이 자국 정부의 지침과 달리 한국의 제안을 수용할지 여부가 불투명한 이유다. 아울러 보수층을 지지기반으로 하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이 내달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는 것도 당장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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