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리다서 재선 출정식…대선 레이스 개막]
“증오 사로잡힌 민주 美 분열∙파괴” 자유 대 사회주의 대립구도 이슈화
지지자들 “4년 더” 열기 후끈… 1억弗 자금확보에도 지지율 뒤져 험로
“우리는 계속 싸우고 있다. 우리는 계속 미국을 위대하게 지킬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간) 2020년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하면서 미국 우선주의를 재천명했다. 2016년 대선 당시 내세웠던 ‘오물 청소(drain the swamp)’, 불법 이민 규제, 장벽 건설 등의 핵심 테마도 재차 강조했다. 워싱턴의 아웃사이더로 기성 정치권을 공격하며 지지자들의 열정을 결집시켜 승리했던 지난 대선 선거운동 방식을 이어간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의제는 전혀 없이 지지자들의 분노를 자극하는 분열적인 선거 운동을 답습하고 있다는 비판도 적지 않게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후 8시 플로리다주 올랜도 암웨이 센터에서 가진 2020년 대선 출정식에서 "우리는 미국을 그 어느 때보다 매우 위대하게 지킬 것"이라며 "이것이 내가 오늘 밤 미국 대통령으로서 재선 캠페인을 공식적으로 개시하기 위해 여러분 앞에 서 있는 이유"라고 대선 출마를 공식화했다. ‘미국을 계속 위대하게(Keep America Great)’를 슬로건으로 내건 트럼프 대통령의 출마 선언으로 제46대 미국 대통령을 뽑는 2020년 11월 3일 대선까지 16개월여에 걸친 대선 레이스의 대장정이 막을 올렸다.
◇분노와 공격으로 점철된 유세 연설
2만석 규모의 유세장을 가득 메운 지지자들의 환호 속에서 부인 멜라니아 여사와 함께 연단에 오른 트럼프 대통령은 1시간 20분가량의 연설 동안 재집권 플랜을 구체화하기 보다는 자신의 성과를 자평하는 동시에 기성 언론, 뮬러 특검, 민주당 등 정치적 적수를 공격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다. 그는 “나는 오물을 청소하겠다고 했는데, 정확히 그 일을 하고 있다. 그것이 오물들이 악랄하고 격렬하게 반격하는 이유다”라며 “지난 2년 반 동안 우리는 포위 공격을 당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우리의 애국주의 운동은 취임 첫날부터 공격을 받았다”라며 자신을 피해자로 묘사하면서 로버트 뮬러 특검 수사와 브렛 캐버너 대법관에 대한 공격 등을 거론해 불만을 쏟아냈다. 오물로 비유한 기성 정치권을 청산하겠다는 2016년의 선거 프레임을 이어가면서 2016년의 역사적 승리를 훼손하는 ‘오물들의 반격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것을 재선 운동의 골자로 삼은 것이다.
◇‘자유 대 사회주의’ 구도 만들기
트럼프 대통령은 또 민주당을 향해 "증오에 사로잡힌 민주당이 미국을 분열시키며 파괴하려고 한다”며 ‘급진적인 좌파 무리' ‘사회주의자’ 등으로 규정하고 "2020년 대선에서 민주당을 찍은 것은 좌파 사회주의를 위한 투표이자 '아메리칸 드림'을 파괴하기 위한 투표"라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은 결코 사회주의 국가가 될 수 없다”며 ‘자유 대 사회주의’라는 대립 구도도 만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러면서 “아메리카 드림은 돌아왔다. 이전보다 훨씬 더 크고 좋고 더 강력해졌다”며 경제 성장과 일자리 창출, 감세와 규제 완화 등 치적을 과시했다. 그는 "우리의 경제는 전 세계로부터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라며 "아마도 우리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경제를 기록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중 무역 분쟁에 대해서는 협상이 재개될 것이라고 소개하면서 “합의되지 않아도 괜찮다”고 주장하기도 했지만, 트럼프 정부의 외교적 성과가 부족한 점을 반영하듯 외교 분야에 대한 언급은 많지 않았다. 싱가포르 정상회담 등 북한 문제에 대한 언급도 없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에 앞서 차남 에릭 트럼프와 장남 트럼프 주니어,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연단에 올라 대선 필승 의지를 다지며 분위기를 띄웠다. 이날 출정식에는 장녀 이방카 부부와 자녀 등 트럼프 가족이 총출동했다.
◇2016년 유세장 분위기…지지자들 전날부터 장사진
지지자들은 “4년 더(Four more years)”를 외치하며 호응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불법 이메일 사건을 재차 공격할 때는 “그녀를 감옥으로(lock her up)”이란 함성도 터져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이나 지지자들의 호응 역시 2016년 선거 유세장을 방불케 했다.
지지자들의 열기는 전날부터 행사장 앞에 진을 친 대열에서부터 확인됐다. 250명 정도가 트럼프 대통령을 가까이 보기 위해 캠핑 텐트와 간이 의자 등을 준비해 전날부터 줄을 선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도 낮 기온이 섭씨 36도를 넘고 폭우가 쏟아지기도 했지만 아침부터 몰려든 4,000여명의 지지자들이 수 시간을 기다리며 장사진을 이뤘다. 오후 3시부터 행사장 입장이 시작됐는데 선착순 입장으로 혹시라도 자리를 잡지 못할까 뙤약볕을 견디며 미리 나온 것이다. 60대의 클레인씨 부부는 “트럼프 대통령을 보기 위해 3시간을 운전해왔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를 대신해 워싱턴 기득권층과 싸우고 있는데 이를 응원하고 싶다”고 말했다. 트럭 운전사인 테리 코즈코씨는 “트럼프 대통령의 인성은 별로지만, 중국에 강하게 대응하는 등 그의 정책 때문에 지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막대한 물량에도 지지율 고전…험난한 재선 여전
트럼프 대통령은 4년 전 6월 뉴욕의 트럼프 타워에서 대선 출마를 선언한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는 외형적 물량을 확보한 상태다. USA 투데이에 따르면 트럼프 캠프 측은 2017년 취임 직후부터 재선 자금을 모아 지금까지 1억달러가량을 기부받았다. 공화당 전국위원회(RNC)도 기금 등을 통해 은행에 8,200만달러를 확보해두고 있다고 폴리티코는 전했다. 소규모 참모 조직만 있었던 4년 전과 달리, 미 전역에 퍼져 있는 풍부한 자원 봉사자 네트워크도 갖춰 인적 규모 역시 공룡 조직으로 비대화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어 재선이 쉽지 않다는 경고음이 잇따르고 있다. 트럼프 재선 캠프측이 지난 3월 자체 조사한 여론조사 결과를 ABC방송이 입수해 14일 공개한 바에 따르면 펜실베이니아, 위스콘신 등 주요 승부처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민주당의 바이든 전 부통령에게 7%포인트에서 16%포인트 차이로 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에 대선 출정식을 벌인 플로리다주를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민주당 후보들에게 모조리 뒤지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CNN 방송이 이날 전했다. 이 같은 지지율 고전은 골수 지지층을 대상으로 한 선거 운동의 한계 때문이라는 게 미국 주요 매체들의 분석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다시 꺼낸 4년전의 승리 방정식이 지지층 결집에는 유효할 수 있지만 확장에는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진단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공격적인 선거 프레임과 막대한 물량 공세로 재선 등정의 닻을 올렸지만 1년 4개월의 여정이 험난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올랜도=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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