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책은 언제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 만일 종이책이 사라진다면 문학의 가치는 지금과 동일할까. 종이책이 사라진 시대에 문학을 향유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문단을 맴돌고 있는 묵은 질문들에 대해 한강 작가는 “오히려 책을 사랑하는 취향이 더욱 특별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19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개막한 ‘2019 서울국제도서전’ 기조강연 ‘영원히 새롭게 출현하는 것들’에서다. 작가는 “사람들은 모니터 속이 아닌 지금 우리 앞에 존재하는, 손으로 만질 수 있고 크기와 무게, 감촉이 있는 매체를 그리워하기 때문에 종이책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도 전망했다.
오후 2시부터 1시간 30분동안 이어진 이날 강연은 한 작가의 인기를 가늠케 했다. 사전예약자 100명을 비롯해 강연장 바깥에 길게 늘어선 독자까지 200여명이 모였다. 100세 철학자 김형석, 모델 한현민과 함께 이번 도서전의 홍보대사를 맡은 한 작가는 기조강연을 통해 책과 문학의 미래가치를 역설하며 도서전의 문을 열었다.
이번 도서전의 주제는 ‘출현’이다. 한 작가는 “가장 새롭게 우리에게 출현해올 것은, 모두 사라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문학과 종이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달 25일 공공예술단체 미래도서관의 프로젝트 일환으로 노르웨이에 다녀온 경험을 이야기했다. 미래도서관은 2014년부터 매년 작가 1명의 미공개 작품을 받아 100년 뒤 출판하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한 작가는 전 세계에서 다섯 번째, 아시아 작가로는 최초로 선정됐다. 내용은 출판 때까지 모두 비밀에 부쳐진 채로 오슬로 도서관에 보관된다.
한 작가는 “프로젝트 운영자들 중 100년 뒤 살아있을 사람은 아마 거의 없겠지만, 오히려 우리의 죽음을 가로지르는 시간 동안 책은 살아남을 것이라 생각하니 마치 미래에 대한 ‘기도’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그는 “세대가 바뀌고 매체가 바뀌어도 우리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문학이 다뤄왔던 주제들, 인간의 삶과 죽음, 고통과 사랑과 슬픔은 영원히 새로운 주제일 것이기 때문에 문학은 영원히 새롭게 출현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평소 읽지 못할지라도 책을 가방에 넣고 다니면 안도감이 든다는 한 작가는 “책을 많이 읽고 나면 강해졌다는 느낌이 든다”며 종이책의 물성이 갖는 힘을 강조하기도 했다. 소규모 독립서점에서 독자들과 낭독회를 했던 경험을 떠올리며 활자매체뿐 아니라 구술로 이뤄진 독서체험의 중요함도 언급했다. 그는 “세상이 다 망해버렸으면 싶다가도, 그러면 책을 만드는 사람들과 그 체계도 없어질 것이라 생각하면 두렵고 상실감이 크다”면서 언젠가는 책에 대한 책을 써보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다.
23일까지 이어지는 ‘2019 서울국제도서전’에는 국내 312개사, 주빈국인 헝가리를 비롯한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중국 등 41개국의 117개사가 참여한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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