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척 주민이 발견 신고ㆍ엔진 사용ㆍCCTV 촬영’ 사실 모두 숨겨 
 남북관계 파장 등 우려해 축소 의혹… 정경두 “책임 엄중히 묻겠다” 
[저작권 한국일보] 삼척항 귀순 북한 목선 시간대별 상황 - 송정근기자

15일 강원 삼척항까지 떠내려온 것으로 알려졌던 북한 선원 중 일부가 처음부터 아이돌 걸그룹 등 남한 문화를 동경해 귀순할 의도를 가지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기관 고장으로 인해 표류하다가 월남해 일부만 귀순했다는 군 당국 발표와 배치되는 대목이다. 국방부가 사건을 축소하려 했다는 의혹이 강하게 일고 있다.

19일 복수의 정보 소식통에 따르면, 국가정보원과 군 등으로 구성된 합동조사팀은 북한 주민 4명 중 귀순 의사를 밝혔던 2명의 북한 주민이 당초 귀순 목적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했다. 남쪽에 남은 1명은 “평소 남한 문화를 동경해왔다. 특히 걸그룹에 관심이 많았다”는 취지로 진술했으며, 다른 1명은 개인 신상을 이유로 든 것으로 전해졌다. 국정원로부터 해당 사건 경위를 보고받은 이혜훈 국회 정보위원장도 이날 “젊은 선원은 한국영화 시청 혐의로 북한에서 조사 받고 처벌을 우려하는 상황”이라며 “(한국 영화를) 상습적으로, 굉장히 많이 본 사람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구멍 뚫린 해상ㆍ해안 경비체계

조사팀과 군 당국이 파악한 바에 따르면 북한 선원 4명은 이달 9일 함경북도에서 출항해 이튿날 동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어선 집단에 합류한 뒤 11~12일 위장 조업을 했으며 12일 오후 9시쯤 NLL을 넘었다.

이어 13일 오전6시쯤 울릉도 동북방 30㎚(노티컬마일ㆍ약 55㎞) 해상에서 엔진을 끄고 정지한 상태에서 오후 8시쯤 기상악화로 해상에서 표류하다가 항해를 재시작해14일 오후9시쯤 삼척 동쪽 2~3㎚(약 3.7~5.5㎞)에서 다시 엔진을 끄고 대기했다. 야간에 해안으로 접근할 경우 우리 군의 대응 사격 가능성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표류가 아닌 ‘대기 귀순’이었던 셈이다.

해당 목선은 이튿날인 15일 해가 뜬 후 삼척항으로 출발해 오전 6시20분쯤삼척항 방파제 부두 끝 부분에 접안했다. 이어 오전 6시 50분쯤 산책하다 차림새가 특이한 4명이 부두에서 활보하는 것을 발견한 삼척 현지 주민이 “어디서 왔는가”라고 묻자 이들은 “북한에서 왔다”며 “서울에 사는 이모와 통화할 수 있게 휴대폰을 빌려달라”고 답한 것으로 조사됐다. 해당 주민은 112에 신고했고, 해경 경비정이 출동해 이들이 타고온 목선을 보안이 용이한 동해항으로 끌고 갔다.

이들이 NLL 통과 후 뭍까지 3일간 우리 해상에서 움직였지만 해상ㆍ해안 경비체계는 이들을 포착하지 못한 셈이다. 당시에는 오징어 무리가 NLL 북방에 형성돼 북한 어선이 상당수 근접해 있던 상황이라 해군 해상초계기와 군함 수척을 동원해 감시 수준을 높였지만 무용지물이었던 셈이다. 또 해양수산청과 해경의 폐쇄회로(CC)TV에서도 삼척항에 접근 중인 목선을 식별했고, 육군이 관리하는 감시초소(GP)의 지능형 영상 감시체계(IVSㆍIntelligent Video Surveillance System)에서도 1초씩 2차례 해당 목선이 찍혔다. 하지만 이들 모두 우리 어선으로 판단해 별다른 조치는 취하지 않았다.

◇속속 드러나는 당국 거짓말

해상ㆍ해안 경계가 뚫린 것도 문제지만 군 당국이 사안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주요 사안을 누락하고 발표하거나 일부 말을 바꿔 불신을 키우고 있다. 군 당국이 기자들을 상대로 첫 설명을 한 17일에는 어선이 삼척항 방파제에서 주민 신고로 발견된 것에 대해 언급조차 없었다. 대신 군경계에 문제가 없었다는 해명에 치중했다. 어선 발견 당시 선박 높이가 파고보다 낮아 레이더 감시요원들이 파도로 인한 반사파로 인식했다는 취지였다. 목선이 먼 바다에 있어서 식별이 어려웠다고 설명한 것이지만, 방파제에서 발견된 사실을 언급하지 않아 마치 해상에서 발견된 것처럼 설명했다.

또 합참 관계자는 “기동을 안하고 몇 시간 동안 해류 정도 속도로 떠내려오니까, 근무자들이 해면인지 목선인지 구분이 안 됐다”면서 “6㎞ 정도 범위에 와서 기동을 했으면 분명히 잡았을 것”이라고 확답했지만, 이도 거짓이었다. 해당 목선에는 경운기에 사용되는 정도인 28마력의 엔진이 달려 있었다. 특히 조사 결과 이들이 15일 해가 뜬 오전 5시 무렵부터 삼척항에 접안한 1시간가량 엔진으로 기동했지만 우리 군은 이를 식별하지 못했다.또 전날 통일부 당국자는 선장의 동의를 받아 해당 목선을 폐기했다고 밝혔지만, 이날 군 당국은 해군 1함대에 보관 중이라고 정정했다.

군 당국 등이 정확한 사실관계에 대해 밝히지 않은 이유에 대해, 해상ㆍ해안 경비체계의 허술함을 축소하고, 고의 귀순으로 인해 남북관계에 미칠 파장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 측 어선이 뭍에 도달할 때까지 포착하지 못한 군이 받을 비난을 의식해 어선 발견 지점을 정확히 밝히지 않고, 귀순 의사를 밝힌 주민 2명에 대해 북측이 강제 송환을 요청할 경우 난감해질 것을 우려했다는 의미다. 군 관계자는 “(방파제 미언급은) 저희가 판단을 잘못한 거 같다”고 했다. 축소 의혹과 관련해선 “우리만 안 것도 아니고 주민들이 다 봤고 숨길 수 있는, 은폐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부분”이라며 “은폐나 이런 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합참은 또 안규백 국회 국방위원장에 한 대면보고를 통해 “민간 목선이기 때문에 합참이 신문에 참여하지 못하고 통일부가 해서 (1차보고에서) 오류가 나왔다”고 설명했다.

안아람 기자 onesho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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