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명의 차이나는 발품 기행] <18> 동티베트④ 절다산ㆍ해라구ㆍ상리고진 
중국 쓰촨성 간쯔현 해라구 케이블카에서 본 숲과 설산
해라구 관광지도.

타궁초원을 지나 남쪽으로 내려간다. 1시간도 걸리지 않아 도착한 마을은 신두챠오다. 쓰촨에서 가장 예쁜 풍광을 지니고 있어 사진작가가 꽤 동경하는 도시다. 동쪽 끝 상하이부터 서쪽 끝 티베트 3대 도시 시까쩨에 이르는 318번 국도가 지난다. 차마고도는 여러 갈래인데 윈난에서 라싸에 이르는 길이 많이 알려져 있다. 또 하나는 쓰촨에서 출발한다. 차마고도의 흔적을 지닌 천장공로(川藏公路)다. 중국 한복판을 동서로 가로지른다. 국도 길이가 무려 5,476km, 경부고속도로의 13배다. 중국에서 가장 긴 국도다. 신두챠오 시내를 벗어나 동쪽으로 달린다. 쾌청한 날씨, 기분 좋은 드라이브다.

신두챠오로 들어가는 길.
318번 국도, 천장고도를 동쪽으로 달린다.

점점 오르막이다. 능선을 휘돌아 오르면 동티베트 캉바제일관(康巴第一关)인 절다산(折多山) 고개다. 해발 4,298m를 알려주는 바위에는 앞쪽에 ‘절다산’, 뒤쪽에 ‘서출절다(西出折多)’라고 새겼다. ‘앞과 뒤’가 상대적이라면 ‘동과 서’는 절대적 위치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보는 방향이 앞쪽이다. 쓰촨이 생산한 차(茶)는 절다산을 넘어 1,700km를 행군해야 라싸에 도착한다. 척박한 동티베트에는 차 재배가 불가능하니 동쪽 어딘가에 생산지가 있으리라.

절두산 고개에서 북쪽 10km 지점에 캉딩공항(康定机场)이 있다. 해발 4,280m로 세계에서 세 번째로 높은 곳에 위치한 공항이다. 1ㆍ2위도 중국에 있다. 2위는 시짱에 있는 방다공항(4,334m), 1위는 쓰촨 야딩공항(4,411m)이다. 무슨 대회도 아닌데 싹쓸이다. 현재 건설 중인 시짱의 나취공항은 4,436m로 곧 1위를 탈환한다.

해발 4,298m 절다산 고개

고개부터 점점 내리막이다. 동티베트의 중심인 캉딩까지 1시간이다. 캉딩은 차마고도의 중요 길목으로 쓰촨 간쯔(甘孜) 자치주의 수도다. 해발 2,560m이니 대충 따져도 1분에 30m씩 내려간다. 경제 발전은 캉딩도 번화한 도시로 만들었다. 강변을 따라 20층 넘는 호텔도 꽤 많다. 동티베트 땅을 1주일이나 다녔더니 다소 지친다. 약 10만원인 5성급 호텔에 들어서니 오랜만에 포근한 느낌이다. 티베트 고원에서 어렵사리 재배되는 보리로 발효한 칭커주(青稞酒), 목넘김 좋은 42도 백주로 피로를 푼다. 밀봉한 도자기 입구를 불로 녹이는 장면도 흥미롭다. 민물 생선을 뜨거운 기름에 익힌 수이주위(水煮鱼)와 구색을 맞춘다. 대표적인 쓰촨요리이자 안주로 안성맞춤이다.

티베트 보리로 발효한 칭커주.
해라구 빙하 삼림공원 입구

캉딩 남쪽에 주봉이 7,556m인 궁가산(贡嘎山)이 있다. 2시간을 달려 빙하로 유명한 해라구(海螺沟)에 도착한다. 중국은 빙하를 빙천(冰川)이라 한다. 입장권과 관광차량 및 케이블카 왕복 티켓까지 310위안(약 5만2,700원)이다. 관광차량을 타고 1ㆍ2ㆍ3호 캠프를 지나 간허바(干河坝)에 도착한다. 1시간도 더 걸린 듯하다. 도로는 30km가 되지 않지만 1,600m에서 3,000m까지 올랐다. 몸이 고산에 반응하기 시작한다. 천천히 느릿느릿 케이블카를 타러 간다.

4호 캠프까지는 약 3.5km, 고도는 600m 높아진다. 관광객이 많지 않아 조용히 미끄러지듯 오르는 케이블카에서 차분히 앉아 정면만 바라본다. 가끔 아래를 바라보면 숲이다. 숲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위로 시선을 올리니 설산과 구름이 현란하다. 조금 지나면 나무는 완전히 사라지고 온통 눈이다. 고개를 하나 넘으면 빙하와 설산이 겹쳐 보인다. 설산이 빙하로 변신해 협곡에 꽉 들어찬 느낌이다. 발아래 1호 빙하는 양쪽 고산이 해를 막아준 덕분이다. 중국에서 가장 낮은 위치에 응고한 빙하로 유명하다. 빙하는 늘 위를 향해 바라보는 줄 알았다. 겨우 2,850m다. 백두산 높이에 빙하가 있다니 믿기 어렵다. 직접 눈으로 보고도 말이다.

해라구 케이블카에서 본 설산과 빙하.
4호 캠프에서 본 1호 빙하.

케이블카에서 내린다. 빙하 옆이라 걱정했는데 날씨는 따뜻하다. 관망대에 서서 1호 빙하를 바라본다. 아래부터 위까지 거의 1,000m 격차가 난다. 그래서 내려다보기도, 올려다보기도 한다. 빙하 가운데 흐르는 대빙폭포(大冰瀑布)는 끊임없는 빙하의 원천이다. 눈 덮인 산이 설산이면 빙하는 물이 되지 않은 얼음이다. 빙하와 설산을 아주 가깝게 보니 신기할 따름이다. 해발 6,000m가 넘는 설봉이 사방에 자리잡고 있다. 강하게 부는 바람이 빠르게 구름을 휘젓는다. 설봉 아래 머무는 구름이라 눈이 변해 날아오는 착각이 든다. 구름은 좌우로 날기도 하고 위아래로 솟구치기도 한다.

반대쪽 등산로로 10여분 오르면 사면관음이 설산을 배경으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영혼조차 순백으로 변하는 공간, 관음보살은 네 방향으로 시선을 두고 있다. 결가부좌로 무릎에는 선재동자를 앉혔다. 인간의 모든 번뇌를 구제하는 관음이 아니라도 세상사 고통과 시름을 잊게 하는 천혜의 풍광이 아닌가? 궁가산 7,556m 주봉이 순수를 보여주건만 무엇이 아쉬워 불심까지 끄집어내려 하는가? 인간의 욕심은 하늘을 찌르고도 남는다. 설봉이 코앞이라 공기조차 돈 주고도 사지 못할 가치다. 그 어떤 해탈의 감흥보다 더 날아갈 듯한 기분이다.

선재동자를 앉힌 사면관음과 빙하.
사면관음 위치에서 본 궁가산 주봉과 빙하
해라구 케이블카를 타고 하산하며 본 협곡.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간다. 설산과 빙하에 감탄하느라 미처 보지 못한 협곡으로 자연스레 시선이 옮겨진다. 생각보다 넓게 키 작은 나무가 분포하고 있다. 빙하가 미처 닿지 못해 생긴 숲이다. 해라구에 다시 오면 반드시 하루 묵을 생각이다. 다섯 가지 매력이 있다고 자랑한다. 원시삼림과 빙하, 티베트 민속 외에도 온천과 일출로 유명하다. 설산 골짜기에서 솟는 신탕(神汤)이 있다. 산 아래 온천이 뜨겁다면 산 위 일출은 불 탄다. 은빛 만년설 위로 태양이 떠오르며 직사한다. 금빛 찬란한 광경을 순간적으로 연출한다. 궁가산의 일조금산(日照金山)이다. 설산을 화염으로 바꾸는 마술이다. 온천과 일출, 빙하를 함께 즐기는 일품여행을 위해 또 오고 싶은 해라구다.

아쉬운 마음을 남기고 야안으로 간다. 차 문명의 발상지로 유명한 몽정산을 끼고 있다. 야안은 쓰촨에서 라싸에 이르는 차마고도의 출발 지점이다. 티베트는 생명과도 같은 차에 대한 수요, 중원은 전쟁과 교통 수단인 말을 공급받기 위해 교환가치가 생겼다. 시장인 차마호시(茶马互市)와 관청인 차마사(茶马司)가 설치된 도시가 야안이다. 라싸로 들어가는 중원의 도시마다 관청을 개설했다. 야안 외에도 북쪽에는 간쑤의 텐수이, 남쪽에는 윈난의 이방이 유명하다. 야안으로 오는 말이나 라싸로 가는 차나 험준한 고개와 비바람을 견디며 이동했다.

상리고진의 쌍절효 패방 전경.
상리고진 쌍절효 패방의 석조.

야안에서 몽정산을 지나 상리고진(上里古镇)에 도착한다. 중원에서 변방으로 나가는 길목으로 역참이 있던 마을이다. 동티베트 발품도 정리할 요량으로 하루 숙박할 계획이다. 고산지대도 아니고 동티베트 문화도 없지만, 쓰촨의 10대 고진이라 머무르고 싶었다. 먼저 쌍절효(双节孝) 패방이 나타난다. 날씬한 모양새가 예쁘장하다. 절개를 지켜 효도를 이룬 공로다. 한씨(韩氏) 집안의 여식과 며느리가 함께 수절하자 청나라 도광제의 칙령으로 세웠다. 180년 세월의 패방, 가까이 들여다보니 담백한 맛이 풍긴다. 석조로 새긴 글자는 물론 인물이 섬세하고 사실적이다.

상리고진의 한가대원 대문.

고진은 대부분 도랑을 따라 조성된다. 다리를 건너 마을로 들어서니 바로 한가대원이다. 상인으로 부를 쌓은 후 후손에게 교육비를 투자한 효과가 나타난다. 청나라 도광제에 이르러 2명이 진사에 합격하고 15명이 무과를 통과한다. 정문에는 5품 관원에게 하사하는 위수부(卫守府) 편액이 걸렸다. ‘대청도광’ 낙인을 새기고 테두리는 도금으로 위용을 세웠다. 조상을 봉공하는 사당도 있지만 객잔으로 사용하는 방이 많다.

밖으로 나오다가 문을 지키는 신과 만난다. 중국의 대문은 당 태종 이세민의 부하 장군인 진경과 울지공이 지킨다. 용왕은 자신과의 약속을 어긴 이세민의 꿈에 등장해 괴롭힌다. 그러나 두 장수가 문을 지키면 혼비백산 달아났다. 초상화를 걸어둬도 마찬가지, 그래서 지금도 매년 춘절이 오면 새로 붙여두는 풍습이 있다. 가끔 동네마다, 집마다 다른 그림이 등장하면 신선하다. 한가대원에는 뜻밖에도 장천사(장릉)와 종규가 걸렸다.

구이저우에서 본 문의 신, 울지공과 진경(자 숙보)
한가대원의 문신, 종규와 장천사.

복(福) 자가 서로 방향이 반대다. 거꾸로 붙이면 복을 내려주는 신이 보라는 뜻인데, 똑바로 붙인 이유는 따로 있을까? 그냥 아무런 이유가 없어야 맞다. 동한시대 도교의 창시자 장릉와 달리 종규는 신화 속 인물이다. 도교라는 신앙은 신화든 역사든 중요하지 않다. 석가모니, 관음보살과 심지어 공자까지 도교 안으로 포용한다. 종규는 만능이고 원하면 뭐든지 들어준다. 관음보살과 쌍벽을 겨루는데 누가 이길지 장담하기 어렵다. 적어도 중국에서는 그렇다. 춘절에는 귀신으로부터 문을 지키고, 단오에는 오독(五毒)을 척살하는 신으로 등장한다.

상리고진의 홍군 석각.

상리고진 거리.

마오쩌둥은 1966년 문화혁명을 시작하며 장칭(부인)에게 보낸 편지에 종규가 등장하는 속담을 거론한다. ‘귀신을 치기 위해 종규의 힘을 빌다(为了打鬼, 借助钟馗)’. 반대파를 공격하라는 촉구다. 종규는 무엇이든 이룰 수 있는 강력한 힘의 상징이다. 대장정이 한창이던 1935년 6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상리고진에 홍군 일부가 머물렀다. 마을 곳곳에 70여 폭에 이르는 석각을 새기며 의지를 불태웠다. 홍군석각은 문물로 보호되고 있다. 도랑 옆 다리를 지나는데 석각이 선명하다. ‘항일반장(抗日反蒋)’을 해야만 ‘나라를 구할 수 있다’는 결의다. 장개석 국민당 군대의 추격을 뿌리치고 악전고투 끝에 나라를 세운 마오쩌둥은 왜 종규까지 거론하며 ‘귀신’을 물리치려 했던가?

상리고진의 식당에서 돼지고기 토막을 튀기고 있다.
다다멘 수공면을 치는 모습.
상리고진의 다러우다다멘.

고소한 냄새가 바람을 타고 이 골목 저 골목을 휘젓고 있다. 돼지고기 토막을 기름에 튀기고 있다. 특별한 이름도 없이 그저 다러우(大肉)다. 된장 양념 소스를 발라 먹기도 하지만 국수에 넣어 함께 먹는다. 야안 일대의 특산으로 다다멘(挞挞面)이다. 상리고진 대가집 성(姓)을 빌어 한사부(韩师傅)를 표방한 가게가 많다. 고기를 얹은 국수, 다러우다다멘이라 부른다. 반드시 수공으로 만들고 면발은 넓다. 반죽으로 면발을 만들 때 바닥에 잘 때려야 한다. ‘탁, 탁’ 소리가 나서 붙은 이름이라는데 아주머니는 한번 내리칠 때 딱 두 번만 때린다. 오랜 경험으로 전승된 박자와 동작이다. 약간 매운 쓰촨 음식이 한국인에겐 제맛이다. 한 그릇 게눈 감추듯 먹는다.

상리고진의 가지 꼬치 구이.
상리고진의 비 내리는 밤.

광장에 좌판이 열린다. 서서히 저녁 장사를 시작할 모양이다. 어둠이 내리더니 비도 내린다. 꼬치 파는 가게는 서둘러 천막을 펼친다. 어딜 가나 양고기꼬치는 반갑다. 중원에서 서쪽으로 갈수록 신선하고 쫄깃하다. 큼지막한 가지는 넓게 펼쳐 구우니 푸짐하고 먹음직스럽다. 식감은 부드럽고 달짝지근하면서 매콤하다. 비는 여전히 주룩주룩 소리를 낸다. 동티베트의 여독을 씻어낸다. 여운은 ‘감성의 서랍’에 차곡차곡 끼운다.

최종명 중국문화여행 작가 pine@youyu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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