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6일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수도 카라카스 미라플로레스 대통령궁에서 지지자들을 앞에 두고 주먹을 치켜들고 있다. 카라카스=AP 연합뉴스

정권과 개인의 안녕을 국가의 미래와 바꾼 것일까. 집권 정당성을 의심받고 있는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대량의 금괴 밀수출 의혹에 휩싸였다. 베네수엘라 중앙은행 소유로 추정되는 최소 7.4톤(약3억달러ㆍ3,530억원)의 금괴 행방이 묘연해진 것. 금괴의 이동 경로를 알 듯한 사람들은 모두 침묵하거나 오리발을 내밀고 있다고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게다가 금괴는 한 번 녹였다 다시 형태를 갖추면 원산지를 확인하는 게 불가능해 추적도 쉽지 않다. 위기에 몰린 마두로가 비자금 확보를 위해 미국의 제재망을 뚫고 금괴를 해외 밀반출했다는 의심을 사기 시작한 것이다.

WSJ보도에 따르면 2019년 3월 2일 새벽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 공항을 이륙한 러시아 노르드윈드항공 소속 보잉 777 전세기가 아프리카 우간다 엔테베 국제공항에 착륙했다. 이내 비행기에서 내려진 3.8톤에 달하는 화물을 옮기기 위해 우간다 경찰과 사설 보안요원들이 격납고로 다가섰다. 이들은 갈색 판지로 잘 포장된 화물을 곧장 활주로 인근 아프리칸금정제소(AGR) 공장으로 실어 보냈다. 신문은 이틀 뒤에도 동일한 비행기가 실어온 3.6톤의 화물이 마찬가지로 AGR 공장으로 옮겨졌다고 덧붙였다.

우간다 경찰에 의하면 이 의문의 화물들은 베네수엘라의 금괴다. 프레드 에난가 우간다 경찰 대변인은 “(두 차례에 걸쳐 들어온) 7.4톤의 금이 정상적 세관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고 말했다. 비정상적 화물에 대한 정보를 입수한 우간다 경찰이 3월 7일 AGR를 급습했지만 처음 들어온 3.8톤의 금은 터키를 최종 목적지로 한다며 중동으로 이미 빼돌려진 뒤였다. 우간다 경찰이 압류한 나머지 3.6톤의 금괴에는 ‘베네수엘라 중앙은행 소유’ 표식이 남아있었다. 일부에는 원산지를 위장하려 한 듯 흠집이 나 있었다고 경찰 관계자는 덧붙였다.

미심쩍은 것은 왜 하필 3월 초에 베네수엘라에서 우간다로 대규모 금괴가 밀수출됐냐는 점이다. 지난 1월 23일 후안 과이도 베네수엘라 국회의장은 마두로 대통령의 취임은 불법이며 내각을 전부 불신임한다고 발표했고 자신을 ‘임시 대통령’으로 공표했다. 1월 23일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도날트 투스크 유럽연합(EU) 상임위원장 등 서방이 과이도 의장을 지지하고 나섰다. 미국은 이어 베네수엘라와 거래하는 외국 기업들에 대한 제재를 시행한다고도 밝혔다. 2월 중에도 과이도 의장에 대한 각국의 지지선언은 계속됐다. 마두로 대통령이 정권을 유지하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에 휩싸여 국부를 유출했으리라는 그럴듯한 의문이 생기는 지점이다.

이 의문을 풀 수 있는 인물들은 모두 입을 다물거나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우간다 경찰과 금융정보 당국에 따르면 베네수엘라 금괴가 옮겨졌던 AGR는 지난 2015년 설립 당시부터 콩고와 남수단, 짐바브웨 등 분쟁지역에서 금을 밀수해 왔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체리 앤 닥닥 ARG 공장장은 “(AGR의) 모든 거래는 합법적이며 밀수된 금이나 분쟁지역의 광물은 처리하지 않았다”고 WSJ에 주장했다. 닥닥 공장장은 “공장이 만들어진 후 38톤의 금을 수출했다”고 밝혔지만 3월 베네수엘라에서 넘어 온 금에 대해서는 언급을 거부했다.

AGR이 기존에 금을 공급했던 곳도 논란거리다. 미국이 2010년 도드 프랭크법을 통해 분쟁지역의 광물을 공급하는 것은 금지했지만, 그러한 광물을 구입하는 것은 제재에서 빠졌다. 이 빈틈을 타고 2018년 AGR은 제너럴모터스와 제너럴일렉트릭, 스타벅스 등 237개의 미국 기업에 공개적으로 금을 공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추측이긴 하지만, 마두로가 밀반출한 것으로 보이는 금괴들이 공교롭게도 미국의 소비자들에게 도달했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는 얘기다.

베네수엘라 의회에 따르면 마두로 대통령 집권 이후 국부 유출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베네수엘라 중앙은행은 터키와 아랍에미리트에 금을 수출했다. 이중 AGR의 설립자인 벨기에 출신 사업가 알랭 괴츠와 연관된 것만 해도 21.9톤에 달한다고 의회는 밝혔다. 올해 1월에도 호세 게레라 야당 의원은 “카라카스 공항에 금괴 20톤이 쌓여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1940년대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석유를 수출해 축적한 베네수엘라의 국부가 마두로 정권 치하에서 대거 유출되고 있다는 것은 확실한 셈이다.

김진욱 기자 kimjinu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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