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하상계수 1대 393.
하상계수는 강에 물이 제일 많을 때와 제일 적을 때 비율을 말한다. 1대 393란 한강에 물이 무려 393배나 불어난다는 얘기다. 심각한 하천 범람을 통제하느라 문명이 발생했다는 이집트 나일강의 하상계수가 1대 30 정도인 것과 비교해보면 어느 정도인지 감이 온다. 한강뿐 아니라 우리나라 강은 모두 하상계수가 크다. 장마로 상징되는 여름철 집중호우, 그리고 가뭄으로 인한 격차 때문이다.
숫자에 약한 주제에 자주 이 숫자를 떠올리는 건 광화문광장 나갈 일이 제법 있어서다. 유럽 도시들의 광장을 부러워한 나머지 유럽 느낌 낸다고 길거리 곳곳에서 검고 동글동글한 돌을 툭툭 박아뒀다. 그런데 이 돌 사이가 너무 패여 길이 울퉁불퉁해지다 보니 멋쟁이 하이힐 아가씨뿐 아니라 배불뚝이 중년 아저씨들도 뒤뚱대기 일쑤다.
라인강 같은 유럽 주요 강들의 하상계수는 끽해봐야 1대 20 안팎이다. 1년 내내 비교적 일정하게 비가 온다는 얘기다. 그런 곳에서 만드는 돌길과 하상계수 1대 393인 곳에 깔아두는 돌길은, 애초부터 운명이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러고 보니 콘크리트에 막힌 한강에 숨통을 틔워주겠다며 모래사장을 복원하자던 얘기도 있었다. 유럽의 친환경운동가들이 그런다니까 무척 좋아 보였던 모양이다. 유럽은 하상계수가 낮다. 다른 말이 필요 없다. 한강에 자주 나가본 사람들은 안다. 한강 주변 길은 한 철마다 뭔가 변해있을 정도로 개보수 공사가 계속 있다. 그 때마다 땅이 낮아지기는커녕, 조금씩 더 높아지고 있다.
그렇게 더 높아진 산책길, 자전거길을 제방 삼아 그 안쪽에 만들어진 운동장, 잔디밭, 공터에서 어린이 축구교실, 레크리에이션 교실, 단합대회 같은 것들이 열린다. 하상계수 1대 393에 이르는 강을 낀 인구 1,000만 대도시에서, 한강변 모래사장에서 첨벙첨벙 물놀이를 하는 게 이것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정의로우며 올바른 일인지, 판단은 알아서 하도록 하자.
그래서 하는 말인데, 광장 사랑을 이제 좀 접었으면 어떨까 싶다. 오랜 독재의 기억 때문일까, 아니면 작가 최인훈의 소설 제목 때문일까, 우리는 광장에 대한 열망이 커 보인다. 잔돌을 박아 넣거나 잔디밭을 깔고 크게 텅텅 비워둔 공간을 저마다 만들어 두는 건 그 때문일 게다.
그런데 유럽의 광장은 기실 왕과 귀족의 열병식, 출정식이 열리던 전체주의적 공간이기도 하다.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던 교장선생님의 훈화말씀을, 퇴약볕 아래 운동장에 열 지어 서서 들어야 했던 기억을 떠올려보면 된다. 잔디밭 또한 그런 넓은 곳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고 잘 관리할 수 있다는, 귀족적 지위와 힘을 드러내는 공간이기도 하다. 때때로 거기다 놀이터를, 장을 여는 건 그들이 은혜를 베푸는 행위이기도 하다. 광장이 결코 곱게만 보이지 않는 이유다.
요즘 취미 삼아 경의선 숲길을 걷는다. 공덕역에서 시작해 ‘연트럴파크’라 불리는 연남동을 지나 가좌역 직전까지 갔다 되돌아온다. 뛰다 걷다 쉬다 그렇게 오가면 왕복 10㎞ 정도에 1시간 남짓 걸린다. 중간중간 끊겨 있지만 큰 지장은 없다. 경의중앙선 서강대역에서 홍대입구역쪽으로 넘어갈 때 큰 길을 한 번 건너야 하는데, 마침 긴 구름다리가 하나 놓여져 있어 쏘다니기 아주 제 격이다. 주변 직장인들만 바삐 오갈 뿐 텅 비어있는 광장에 비해 이 숲길엔 늘 사람들이 북적인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같은 사업을 하려면, 이왕이면 이 참에 숲길로 재구성해보면 어떨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광장의 열정’보다 ‘숲길의 사색’ 아닐까. 그러고 보면 최인훈도 ‘광장 없는 밀실’만큼이나 ‘밀실 없는 광장’에 부정적이었다. 광장과 밀실, 그 중간에 ‘숲길’이 있다 해보면 어떨까.
조태성 사회부 차장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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