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과 페이스북 등 소수 거대 기업이 전세계 인터넷을 장악하는 것은 다양성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고 본다. 네이버는 이들의 ‘인터넷 제국주의’에 끝까지 저항한 회사로 기억되고 싶다.”
20년 전 ‘초록 검색창’ 네이버를 창립한 이해진 글로벌투자책임자(GIO)가 18일 3년 만에 공개 행사에 모습을 드러내 네이버의 과거와 현재, 미래 비전을 공유했다. 한국사회학회와 한국경영학회가 인터넷 상용화 20주년을 맞아 미국과 중국이 장악하고 있는 인터넷 생태계를 돌아보자는 취지로 마련한 자리였다. 좀처럼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은둔형 경영자’라고 불리는 이 GIO는 “워낙 빠르게 변화하는 인터넷 환경 때문에 개인적인 목소리를 공개적으로 내는 것이 조심스럽지만, 20주년이라는 의미가 있는 만큼 인터넷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기 위해 나왔다”고 말했다.
이 GIO는 20년 동안 네이버처럼 자국 언어로 운영되는 고유한 포털사이트가 유지돼 왔다는 사실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현재 전세계에서 미국ㆍ중국 기업이 아닌 자국 포털업체가 1위 사업자인 나라는 러시아와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이 GIO는 “유럽만 보더라도 구글과 페이스북이 들어오면서 자국 데이터가 넘어가고 기존 포털 매출까지 빼앗겼지만 대안이 없는 상황”이라며 “검색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다양성에 기반을 둔 행위이기 때문에, 네이버처럼 자국어로 서비스하는 포털이 있는 것과 없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데이터 주권’ 측면에서도 네이버의 자부심은 상당하다. 이 GIO는 “한글로 된 우리의 데이터를 우리의 손으로 지키고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며 “앞으로 500년, 1,000년이 지났을 때 우리의 문화 데이터를 네이버가 잘 지켰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이 GIO는 해외 ‘공룡’ 인터넷 기업에 맞서 싸우기 위해 자국 기업들이 힘을 키우려는 과정에서 느끼는 장애물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혁신이 생겼을 때 대기업에 과도한 사회적 책임을 묻는 문화와, 벤처 기업의 몸집이 커질수록 견제가 심해지는 분위기가 그것이다. 이 GIO는 “전 세계적 트렌드와 기술에 뒤처지지 않게 신기술을 쫓아가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이런 기업을 향해 탐욕적이고 돈만 추구하는 회사로 몰아가는 분위기가 과하다”면서 “새로운 산업 등장으로 발생하는 피해는 정치와 사회에서 해결을 해주고, 기업은 빨리 달릴 수 있게 해주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GIO는 규모의 경제가 불가능한 국내 기업 환경에도 아쉬움을 표했다. 그는 “미국은 연구개발(R&D) 규모만 수조원대인데, 이를 쫓아가려면 어느 정도 규모의 경제가 필요하다”며 “우리나라는 매출 5조원, 10조원만 돼도 회사를 부도덕한 기업으로 몰아 견제하고 규제하려고 하는데, 과연 이것이 국가 경쟁력에 도움이 되는가에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제조업과 달리 국경이 존재하지 않는 인터넷 환경인 만큼 기준을 글로벌에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인터넷 제국주의에 끝까지 저항했던 기업이 ‘새드 엔딩’으로 끝나지 않도록 큰 시각에서 봐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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