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이 핵합의 일부를 파기하겠다고 경고하자, 미국이 곧바로 군 1,000명을 중동 지역에 추가 파병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이란이 또다시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경고하고 나서 양국 관계는 강 대 강 대치를 거듭하며 악화 일로를 걷고 있다.
17일(현지시간) AP통신 등에 따르면 패트릭 섀너핸 미 국방장관 대행은 성명을 통해 “(중동을 관할하는) 중부사령부 요청에 따라 1,000여명의 추가 병력 파견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다만 섀너핸 대행은 “미국은 이란과 충돌을 추구하지 않는다”며 방어 목적의 파병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조치는 지난달 이뤄진 미군 1,500명 증파에 이은 2차 파병이다.
미국의 발표 반나절 만에 이란은 세계 석유 물동량의 20%가 지나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경고했다. 모하마드 호세인 바게리 이란 참모총장은 이날 군 장성급과 회동에서 "필요시 언제든지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해 페르시아만을 통한 원유 수출을 막을 수 있다"면서 "봉쇄하기로 결정하면 과감히 공개 예고하고 적들을 강하게 타격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란과 우호 관계에 있는 중국과 러시아도 미군 파병 소식에 반발하고 나섰다. 18일 타스통신에 따르면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미국을 향해 “도발적이고, 전쟁을 부추기기 위한 의도적 정책으로 볼 수밖에 없다”며 비판했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도 이날 관련 당사국들을 향해 “판도라의 상자를 열지 말라”고 촉구하면서 “특히 미국이 극도의 압박 방식을 바꿔야 한다”며 책임을 돌렸다.
한편 미국 정부의 파병 결정은 같은 날 앞서 이란이 이란핵합의(JCPOAㆍ포괄적 공동행동계획)에서 정한 핵프로그램 감축 동결 의무를 일부 지키지 않겠다고 발표하자 나온 대응 조치다. 이날 이란 원자력청의 베흐루즈 카말반디 대변인은 아라크 중수로 단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는 6월 27일이면 핵합의에 따라 지금까지 지킨 저농축(3.67%) 우라늄의 저장한도(300㎏)를 넘기게 된다”면서 미국에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이란은 이 같은 의사를 밝히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대이란 공조 체제 흔들기에 나서기도 했다. 미국의 경제 제재를 피할 수 있도록 유럽국이 협조하지 않으면 핵합의를 어길 수 있다는 뜻을 드러내면서다. 외신들은 이는 핵합의 서명국인 영국, 프랑스, 독일을 향해 '미국과의 대(對)이란 압박 공조 전선에서 이탈하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에 맞서 미국도 ‘대이란 압박 전선’ 단속에 나섰다. 이란의 핵합의 일부 파기 발표에 개럿 마퀴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은 "핵 협박과 마찬가지"라고 비판했고, 모건 오테이거스 국무부 대변인도 "우리는 (이란의) 핵 협박에 굴복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날 미 국방부는 지난 13일 오만해에서 발생한 유조선 피격의 배후로 이란을 지목한 데 대해, 증거 사진 여러 장을 추가 공개하기도 했다. 사진에는 공격당한 일본 소유 유조선에 부착됐던 폭탄의 자석 부품 등 잔여물과 이를 제거한 이란 혁명수비대(IRGC) 대원으로 추정되는 인물들의 모습이 찍혀 있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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