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형' 이강인이 17일 서울광장서 열린 U20 월드컵 준우승 달성 축구대표팀 환영식에서 팬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몇 주 국민들은 축구 때문에 행복할 수 있었다. 20세 이하(U-20) 풋풋한 우리 선수들이 위풍당당하게 세계 2위에 올라 모두를 짜릿하게 했다.

결승까지 오른 것도, 사상 첫 골든볼 수상도 대단하지만 그 결과를 만들어낸 과정이 이전 선배들과 달라 놀라웠다. 훈련장에 크게 음악을 틀어놓고, 경기 후 버스 안에선 떼창을 하는 유쾌하고 발랄한 선수들은 처절한 투혼 없이도 최고의 성적을 만들어냈다. 무엇보다 이강인의 진가를 확인한 건 큰 수확이다. 이강인은 한 발로 공을 정지시킨 뒤 몸을 360도 돌려 상대를 따돌리는 고난도의 ‘마르세유 턴’ 등을 자유자재로 구사해가며 두세 명의 압박 수비를 손쉽게 제쳤다. 이강인의 현란한 플레이를 통해 ‘탈압박’이란 생소한 단어도 회자됐다.

U-20 대표팀이 이룬 놀라운 성과엔 밀레니얼 세대 선수들과 소통을 중시하면서 창의력을 극대화한 지도자들의 헌신이 밑바탕이 됐다. 또 지난 10여년 한국 축구에 뿌리를 내린 유소년 축구 육성 정책의 힘도 크다. U-20 대표팀 중 해외유학파 이강인과 최민수를 제외하면 19명 전원이 K리그의 유스 시스템과 대한축구협회의 골든에이지 프로그램 등 유소년 육성 시스템을 통해 배출됐다. 이강인 외의 다른 선수들도 볼 터치나 패스 등 개인 기량이 이전 대표선수들보다 낫다는 평가가 나오는 건 이 때문이다.

U-20 대표팀이 폴란드에서 선전하는 동안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성인대표팀은 A매치 평가전을 가졌다. 여기서 탄생한 스타는 단연 백승호였다. 자신의 첫 A매치 출전인 이란전에서 백승호는 현란한 개인기로 라리가에서 닦은 탈압박 능력을 과시했다. 이강인과 백승호가 있어 벤투호는 공격 2선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희망이 생겼다. 탈압박은 벤투 감독이 최우선으로 한국 축구에 심으려 하는 ‘빌드업(build upㆍ공격 전개)’ 플레이에 반드시 필요한 능력이다.

현대 축구의 트렌드를 크게 3가지로 정리한다면 빌드업과 압박, 전환이다. 이중 골키퍼부터 차근차근 패스를 통해 공격의 활로를 찾아나가는 빌드업은 현대 선진 축구의 핵심이자 기본이다. 유럽의 명문인 맨체스터 시티나 바르셀로나FC처럼 빌드업에 강한 팀은 후방에서부터 상대의 압박을 풀어내고, 이를 통해 점유율을 높이며 압도하는 경기를 펼친다. 이 견고한 빌드업을 깨기 위한 것이 강한 압박이다. 유럽 챔피언스리그 우승팀인 리버풀은 위르겐 플롭 감독의 전매특허로 ‘게겐프레싱(gegenpressing)’이란 신조어까지 생긴 강력한 전방 압박으로 유명하다.

빌드업의 관건은 상대의 압박을 이겨내는, 즉 탈압박이 가능한 개인 기량이 바탕이 돼야 한다. 자칫 후방이나 미드필드의 빌드업 과정에서 공을 뺏기면 바로 치명적인 역습을 맞기 때문이다. 기량이 부족해 탈압박이 자신 없는 선수들은 결국 의미 없는 백패스나 횡패스로 공만 돌리고 만다. 차근차근 전진하는 빌드업이 힘들면, 결국 앞으로 멀리 차올려 운 좋게 우리 선수 머리 위로 떨어지기만 바라는 ‘뻥 축구’ 밖에 할 게 없다.

올해부터 초등학교 축구엔 8인제가 전면 도입됐다. 어린 아이들이 보다 많이 공을 다루고 창의력을 키울 수 있는 방식이다. 빌드업의 기초를 다지기 위함이다. 이런 밑바닥 유소년 축구 시스템의 개선을 시작으로 한국 축구 자체도 차곡차곡 빌드업을 해나가고 있다.

손흥민과 이강인, 류현진 등 세계를 쥐락펴락 하는 ‘슈퍼 코리언’이 있어 스포츠에서 한국의 위상은 높다. 하지만 우리의 다른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미국과 중국간 무역분쟁 속 중간에 낀 우리는 거센 압박을 받고 있다. 양자택일을 하기엔 힘든 상황. 리버풀의 게겐프레싱 보다도 숨막히는 압박이다. 이 위기를 멋지게 탈압박 할 수 있는 ‘마르세유 턴’ 같은 묘책은 없는 걸까.

이성원 스포츠부장 sungwon@hankookilbo.com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