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ㆍ모방을 통해 빠르게 따라가는 추격자)일 때 거뒀던 성공의 기억을 버려야 한다.”
엄미정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연구위원은 “특정 기술이 뜨면 관련 인재 육성 방안을 재빨리 세워 대응했던, 지금까지의 기술인력 정책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효과를 거둘 수 없다”며 이렇게 강조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는 기술변화가 매우 빨라 관련 정책을 세운 뒤 기술인력이 시장에 나올 쯤엔 이미 또 다른 기술이 각광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이어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한 훈련체계 구축방안(고용노동부), 인공지능 연구개발(R&D) 전략과 소프트웨어(SW) 일자리창출전략(과학기술정보통신부), 스마트 제조혁신 비전 2025(산업통상자원부) 등 각 부처가 최근 우후죽순 내놓은 데이터 인재 육성 정책을 언급한 뒤 “이들 정책으로 키우겠다는 데이터 인재만 100만명이 넘는다”며 “중복 투자 우려가 크고, 이 같은 단순한 해결방안으로 대학에선 학과 변경이 잦아지고 필수 기초학문 기피 경향이 강화되는 등 오히려 공학의 뿌리가 흔들리는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18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산업전환기의 미래산업 핵심인력 양성체계를 어떻게 혁신할 것인가’란 주제로 열린 니어재단 주최 포럼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하나 같이 “퍼스트 무버(First moverㆍ시장선도자)가 되려면 미래 산업이 필요로 하는 융합형 인재를 양성하는 쪽으로 기술인력 정책이 바뀌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포럼의 기조 발제자로 나선 오세정 서울대 총장은 “누가 서울대에서 학점을 잘 받는가 봤더니 교수들의 농담도 받아 적는 학생들이라는 조사가 나온 적이 있다”며 “과거에는 주어진 지식을 습득하고 그걸 잘 활용하는 암기식 방법이 통했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어떤 게 문제인지 질문을 던지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른 전문가들 역시 현재 인재육성 정책의 한계에 대해 쓴 소리를 쏟아냈다. 조현정 비트컴퓨터 회장은 “4년제 대학 컴퓨터공학과 졸업 작품이 비전공자가 한 달만 배우면 할 수 있는 안드로이드 어플리케이션(앱) 개발”이라고 지적했다. 현 교육 체제가 고급 기술인력 수요를 전혀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김덕현 혁신과융합 협동조합 이사장도 “문ㆍ이과를 넘나드는 융합 교육, 여러 사람들과 함께 하는 협업 등이 점차 중요해지고 있지만 한국 사회는 여전히 획일화한 인재를 키우는데 머물러 있다”고 꼬집었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선 “정책의 대전환이 필요하다”(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토론자로 나선 배영찬 한양대 화학공학과 교수는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3ㆍ4학년생은 1ㆍ2학년 때 배운 기초과목을 바탕으로 여러 실험을 진행하며 다양한 과목의 내용을 연결하는 연습을 한다”며 “우리도 대학 3ㆍ4학년 때는 MIT처럼 실험 위주 통합과목으로 교육하는 방안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엄 연구위원은 “인공지능(AI) 등 미래기술을 활용해 고령화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선 일본처럼 한국도 미래기술의 응용영역을 정해 선택과 집중하며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 이사장은 “안정적 직장을 선호하고 도전을 꺼리는 사회 분위기도 바꿔가야 한다”고 말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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