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취감, 죄책감, 자존감 등의 감정을 호르몬제로 투여하는 미래 사회. 호르몬제 제조 회사에 다니는 밥과 존은 ‘모성’이 나오는 호르몬제를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받습니다. 다만 조건이 하나 붙습니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모성 호르몬제여야 한다는 거죠. “양육자가 남자일 수도 있지 않냐”는 존의 질문에 회사 대표인 킴은 고개를 저으며 말합니다. “애를 낳는 건 아직, 여자들의 몫이지.”
오늘 프란이 선택한 콘텐츠는 여성주의 SF 단편집 ‘우리가 먼저 가볼게요’ 입니다.
‘우리가 먼저 가볼게요’, 줄여서 ‘우먼볼’은 여성주의적 주제 의식을 명확하게 드러내는 일곱 개의 SF 단편 소설집입니다.
‘모성 호르몬제’라는 독특한 소재로 ‘엄마’와 ‘모성’을 동일시하려는 생각에 반기를 드는 ‘마더 메이킹’ 노아의 방주 이야기를 통해 ‘정상’의 경계가 어디까지인지 다룬 ‘나를 들여보내지 않고 문을 닫으시니라’ 그 외에도 젠더 갈등, 디지털 성범죄, 장애 여성의 성 등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를 다룬 단편들이 가득합니다.
그중에서도 육아와 모성에 대한 편견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다룬 ‘마더 메이킹’과 ‘미지의 우주’ 두 작품이 눈에 띕니다. ‘마더 메이킹’이 모성 호르몬제를 만드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모성이란 단어에 의문을 제기한다면 ‘미지의 우주’는 조금 더 현실적인 문제를 건드립니다.
화성인이자 우주의 엄마인 미지는 2년 동안의 지구 연수 프로그램 대상자로 선정됩니다. 지구 중에서도 근무 환경이 좋지 않다는 한국에 파견될 예정이라 아이를 맡길 보육 기관을 알아보기 위해 고군분투하죠. 그러면서 아빠, 엄마, 아이로 구성돼야 ‘정상가족’으로 보고, 육아에 있어 여성이 더 많은 몫을 부담해야 하는 한국의 이해할 수 없는 문화와 시스템에 부딪힙니다.
화성에도 갈 수 있을 만큼 발전한 미래사회에서조차 육아가 여성의 것이라는 상상이 답답하긴 하지만 이 상상이야말로 ‘우먼볼’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답답한 미래를 조금이라도 바꾸기 위해서는 달라진 사회를 향한 상상력이 필요할 테니 말입니다.
오늘의 프란 코멘트는 일곱 작가 중 한 분이 어느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으로 대신합니다.
“화성인, 인공지능, 좀비가 지구를 지배하는 상황을 SF로 즐기면서, 여성의 인권이 나아진 사회를 상상하지 못한다면 염치없지 않나요?”
프란이 선택한 좋은 콘텐츠,
다음주에도 찾아오겠습니다.
박고은 PD rhdms@hankookilbo.com
정선아 인턴 PD
현유리 PD yulssluy@hankookilbo.com
한설이 PD ssolly@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