람 장관 사과에도 “퇴진하라”… 우산혁명 주도 조슈아 웡 출소
폼페이오 “G20 미중 정상회담서 홍콩 사태 논의할 것” 中 압박
검은 옷을 입은 홍콩 시민들이 16일 '범죄인 인도 법안'(일명 송환법)의 완전 철폐를 요구하며 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홍콩=AP 연합뉴스

어설픈 정부 사과가 오히려 시민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캐리 람 (林鄭月娥) 홍콩 행정장관은 16일 범죄인 송환 법안(이하 송환법) 반대 시위에 200만명 이상의 시민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자 결국 “시민들을 실망시키고 괴롭게 했다”며 법안 추진을 ‘올 스톱’했다. 홍콩인들의 전례 없는 반발을 누그러뜨리는 게 먼저라는 당국 판단에 따른 조치였으나 람 장관의 이 같은 ‘마지못한 사과’에 시민의 격앙은 오히려 더욱 커지고 있다. 공교롭게도 2014년 홍콩 민주화 시위의 상징인 조슈아 웡(黃之鋒)까지 17일 출소하며 송환법 반대 시위는 ‘홍콩 독립 시위’로 확대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17일 “정부가 송환법을 재추진할 시간표가 없다고 분명하게 밝힌 이상 현 입법회(우리의 국회 격) 의원의 임기가 끝나는 내년 7월에 송환법은 ‘자연사’하게 될 것”이라고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철회’라는 표현만 쓰지 않았을 뿐 사실상 송환법은 폐기된 것이나 다름 없다는 뜻이다.

반면 시민들의 분노는 되레 커지고 있다. 람 장관은 최근 집회에서 경찰 물리력까지 동원해 시위를 진압하는 등 송환법 추진에 강경한 태도로 보였다. 그랬던 그가 200만 시민이 거리로 나선 뒤에야 사과한 것은 정치적 제스처일 뿐이라는 게 시위대의 반응이다. 시위에 참가한 사브리나(27)씨는 워싱턴포스트(WP) 인터뷰에서 “람 장관은 시위대가 요구하는 어떤 것도 듣지 않고 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또 다른 시위 참가자 트로이 로(24)씨는 SCMP에 “정말 사과하고 싶었다면, 16일 시위가 일어나기 전에 했어야 했다. 람 장관은 이제 물러나야 한다”고 했다. 최루탄과 고무총 등 물리력으로 시위를 진압했던 람 장관이 이제 사과한 것은 정치적 제스처일 뿐이란 뜻이다.

WP는 “람 장관의 후퇴는 거리로 나온 홍콩인들을 달래는 데 실패했다”며 “홍콩인들이 원하는 것은 송환법의 영구적 폐기와 람 장관의 사퇴 그리고 홍콩의 독립”이라고 지적했다. ‘시민인권전선’의 지미 샴 의장은 “캐리 람 장관이 성명에서 톤을 부드럽게 바꿨지만 아직 홍콩 시민들의 요구에 답하지 않았다”며 “송환법을 완전히 폐기하라는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시위의 수위를 높일 것”이라고 경고했다. 홍콩 시민들은 이에 따라 17일 오후에도 입법회 인근 타마르 공원에서의 집회를 필두로 추가 시위를 이어갔다. 타마르 공원 시위는 특히 전날 정부 청사 인근 쇼핑몰에서 고공 시위를 벌이다 추락사한 30대 남성 량(梁)모씨에 대한 추모 성격을 띠고 이뤄졌다.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은 추모에 앞서 향후 투쟁방향을 놓고 토론을 벌였다. 법안 철회의 최후통첩시한을 언제로 정할지, 향후 시위 동력을 어떻게 살려갈지 서로 묻는 자리였다. 이대로 흐지부지됐다가는 2014년 직선제 추진 실패의 전철을 되풀이할지 모른다는 초조감이 묻어났다. 단체 리더로 보이는 남성은 마이크를 들고 "과거 한국이 시위의 추진력을 살려나갔던 경험을 보았지 않느냐"면서 "여기에 만족해 행동을 그쳐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구체적인 사례를 들지는 않았지만 과거 한국 민주화 운동이 이들의 교범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한 시민은 “향후 투쟁의 동력을 상실하지 않기 위해서는 한국에서 벌어진 (박근혜) 대통령 퇴진 투쟁에서 배워야 한다”며 “시민들의 생활에 타격을 주지 않기 위해 휴일에 집회를 열어 더 많은 시민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위대의 요구가 람 장관 사퇴로 모이고 있는 가운데 홍콩 민주화 시위인 ‘우산 혁명’을 주도했던 웡의 움직임도 동력을 보태고 있다. 2014년 네이선 로, 알렉스 초 등과 함께 홍콩 행정장관의 완전 직선제를 요구하는 시위로 홍콩은 물론 전세계 이목을 끌었던 웡은 이날 오전 라이스콕 구치소를 나온 뒤 타마르 공원 집회에 참가해 람 장관의 퇴진을 촉구했다. 앞서 이날 열린 기자회견에서도 웡은 “그(람 장관)는 더 이상 홍콩의 지도자가 될 자격이 없다”며 시민들의 추가 시위를 독려했다.

반면 중국 정부는 람 장관에 대한 지지 입장을 재확인했다. 루캉(陸慷)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중국 중앙정부는 행정장관과 홍콩 특별행정구 정부의 법에 따른 통치를 확고히 지지할 것”이라고 했다.

홍콩 사태에 대한 우려를 표명해온 미국도 이달 말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홍콩 문제를 다룰 것이라고 예고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16일(현지시간) 미국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홍콩 문제는 G20에서 개최될 예정인 미중 정상회담에서 다뤄질 주요한 사안 중 하나”라고 말했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항상 인권의 수호자 역할을 했으며, 그가 중국에 관세를 부과한 것도 중국 공산당의 독재에 맞서 인권을 수호하기 위해서”라고 거듭 중국을 압박했다.

홍콩=김광수 특파원 rollings@hankookilbo.com

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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