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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야, 우정 증표로 함께 4억 보험 가입을...” 15년 절친 살인의 덫을 놓다

입력
2019.06.25 04:40
수정
2019.06.25 09:54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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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능범죄 당신을 노린다] <9> 대구 금호강 보험금 살인사건

[저작권 한국일보] 그래픽 강준구 기자/2019-06-24(한국일보)
[저작권 한국일보] 그래픽 강준구 기자/2019-06-24(한국일보)

2015년 4월 23일 오전 11시 58분.

대구 북구 서변동 금호 제1교 아래 둔치에 20대 남성으로 보이는 시신이 있다는 신고가 112에 접수됐다. 금호강 동화천변 콘크리트 벽 아래, 전신주와 큰 하수관 사이, 이제는 고통도 잊은 듯 시체가 축 늘어져 있었다.

죽은 지 보름 정도 지난 시체의 상태는 처참했다. 머리, 배, 가슴 일부는 부패됐다. 머리는 모난 둔기로 여러 번 두들겨 맞은 듯 했다. 이마에 4군데 등 앞 뒤 옆 할 것 없이 머리에만 17곳에 맞은 흔적이 남아 있었다. 혹독한 폭행이었지만, 맞서 싸우거나 저항한 흔적은 없었다. 처음 일격으로 방어할 힘도 없이 무너진 피해자를 무자비하게 가격한 셈이다.

이 사건 수사를 지휘했던 강영우 경북 의성경찰서장(당시 대구경찰청 강력계장)은 “잔혹한 범죄 수법으로 봤을 때 ‘원한 범죄’를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대구 강북경찰서는 형사 36명으로 구성된 6개팀의 특별수사반을 꾸렸다.

◇살인범은 실종신고 권하던 피해자의 죽마고우

경찰은 피해자 윤모(당시 29)씨 주변을 탐문하기 시작했다. 윤씨는 인근 A공장에서 야간조로 일하던 사람이었다. 어머니는 일찍 여의었고, 아버지는 치매로 요양병원에 있었다. 대구에서 자취하며 돈 더 얹어주는 야근조에 자원해 열심히 일하던 착실한 청년이었다. 살펴보니 시신 발견 11일전인 4월 12일, 이미 윤씨에 대한 실종신고가 접수되어 있었다. 4월 5일 “부산에 잔치가 있어 아버지를 모시고 가야 한다”며 평소보다 3시간 빠른 새벽 5시쯤 조퇴한 뒤 연락이 끊겼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사체 발견 당시 윤씨 모습은 퇴근 직후 그대로였다. A공장의 작업복ㆍ티셔츠 차림이었다. 가방에는 공장에서 간식으로 나눠준 빵과 우유가 썩은 채 남아 있었다. 조퇴 직후 사건이 있었다는 얘기다.

4월 5일 새벽 5시 전후 공장과 다리 부근 폐쇄회로(CC)TV 화면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시간대가 일렀던 만큼 다른 사람은 없었다. 윤씨가, 그리고 윤씨와 함께 걸어가는 사람만 있었다. 유력 용의자인 그 사람은 170㎝ 정도의 키에 마른 체형이었다. 비가 제법 내린 날이라 후드 티 모자를 뒤집어써 얼굴은 알아보기 어려웠다. 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쳐다보며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윤씨와 아는 사람, 즉 면식범의 소행이었다.

경찰이 주목한 건 용의자의 조금 특이한 걸음걸이. O자형 다리(양측 내반슬)에 팔자 걸음(양측 외족지 보행)이었다. 동시에 왼쪽 발을 바깥으로 차면서(원회전 보행) 걷는 습관이 있었다. 경찰은 일절 다른 설명 없이 윤씨 친구 5명을 불러다 용의자가 걸어가는 영상만 보여줬다. 친구 5명은 이구동성, 윤씨의 친구 박모(33)씨를 지목했다. “마스크를 끼고 변장을 해도, 걸음걸이만으로 알아볼 수 있다”, “어디 섞어놔도 저 걷는 폼만 보면 바로 알아볼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박씨는 윤씨 실종 뒤 윤씨의 사촌 형을 찾아가 실종신고라도 하라고 권했다던, 윤씨의 죽마고우였다.

[저작권 한국일보]범인 박씨 걸음걸이/ 강준구 기자/2019-06-24(한국일보)
[저작권 한국일보]범인 박씨 걸음걸이/ 강준구 기자/2019-06-24(한국일보)

◇서로 부모님을 책임지자던 우정의 증표 ‘보험’

박씨와 윤씨는 경남 거창에서 같은 중학교를 다니면서 ‘절친’이 됐다. 둘만 단짝으로 지낸 게 아니었다. 서로의 부모님을 자신의 부모님인 양 깍듯하게 챙겼고, 삼촌ㆍ사촌 등 친척들과도 자주 연락을 주고 받았다. 어른이 돼서도 서로 고민을 털어놓으며 술잔을 주고받는 사이였고, 함께 일한 돈을 모아 여행을 가기도 했다. 사업 하자고 의기투합, 대구에 올라와 동고동락하며 인터넷 쇼핑몰을 열기도 했다. 사업이야 신통치 않아 석 달 만에 접어야 했지만, 우정은 더 굳건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박씨는 계약서 한 장을 내밀었다. 보험계약서였다. 서로를 수익자로 하는 사망보험이었다. “친구야, 만약에 우리 둘 중에 누구 하나 먼저 죽으면 남은 사람이 다른 부모님까지 다 모시자. 우리 어렵지만 열심히 살고 있잖아, 맞제? 나한테 무슨 일 생기면 우리 부모님 잘 부탁한데이~.”

어릴 적 어머니를 잃었던 윤씨에게 박씨 부모님도 친부모님 같았다. 보험설계사인 박씨의 사촌 형을 통해 2015년 1월 31일 두 사람은 서로를 수익자로 하는 보험에 가입했다. 보험 수익자를 가족이나 상속인이 아니라 친구로 지정하는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다. 박씨 사촌 형도 “이런 계약을 처음 본다”고 말할 정도였다. 일반 상해 사망은 4억원, 질병 사망은 2억원을 지급한다는 내용이었다. 매날 28만5,000원을 내야 했다. 중소업체 공장 노동자에겐 적지 않은 금액이었지만 15년간 생사고락을 함께 해왔고, 또 앞으로 해나갈 친구와 맺은 ‘우정의 징표’라 생각했다. 멋진 친구의 멋진 아이디어라고만 여겼다.

◇죽마고우가 놓은 정교한 덫

멋진 아이디어는, 알고 보니 정교한 범죄 계획이었다. 당시 박씨는 위기에 몰려 있었다. 어려운 형편이라 해도 공장 야근조에서 열심히 일하던 윤씨와 달리, 박씨는 일정한 직업 없이 빚만 있었다. 여자친구에게 빌린 돈만 6,300만 원이었고, 또 다른 여자친구에게도 800만원 정도 빌렸다. 교통사고 때문에 보험사에 물어야 할 원금과 지연손해금 등 구상금도 3,000만원 정도 있었다. 인터넷 요금 등 연체 독촉도 받고 있었다. 거창에서 작은 식당을 운영하던 부모님도 장사가 여의치 않아 도움을 주기 어려웠다.

이런 박씨였으니 보험에 가입한다 해서 보험금을 낼 수 있는 형편도 아니었다. 박씨는 계약 직후부터 보험금을 연체하다 계약 자체가 실효됐다. 보험을 우정으로 여긴 윤씨만 착실하게 보험금을 냈다. 심지어 윤씨가 보험금 납입을 버거워할 때면, 박씨가 어떻게든 도와주기도 했다. 박씨 입장에서 윤씨 보험을 유지시키는 게 가장 중요한 목표였다. 윤씨는 이 또한 깊은 우정이라 생각했다. 박씨에겐 이제 결행의 순간만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 또한 나름대로 정교한 계획이 필요했다.

사건 당일인 2015년 4월 5일 새벽 2시. 박씨는 경남 거창에서 택시를 탔다. 나중에 택시기사가 경찰에 진술한 바에 따르면, 박씨는 후드 티를 푹 뒤집어 쓴 채 택시를 타서는 “목 수술을 해서 말을 못 합니다. 대구 본리 네거리까지 얼마입니까”라고 적힌 쪽지만 보여줬다. 부슬부슬 내리는 봄비 사이로 택시는 한 시간여를 그렇게 침묵 속에서 달렸다.

박씨 나름의 치밀한 계산도 있었다.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새벽에 거창을 떠났을 뿐 아니라 대구 본리 네거리에서 택시를 다시 한번 갈아타고 범행 장소로 이동했다. 알리바이도 구성했다. 거창에서 대구행 택시를 타기 직전인 새벽 1시 50분, 그리고 범행 뒤 집으로 돌아와서는 오전 8시 50분, 여자친구에게 한 번씩 전화를 걸었다. 거창에서 잠을 푹 잤다는 걸, 기지국에 증거로 남기기 위해서였다.

◇직접증거가 없어 곤혹스러운 경찰

박씨를 체포했지만 경찰은 곤혹스러웠다. CCTV자료와 친구들의 증언이 있었다. 범행 당일 새벽에 대구로 들어간 택시 580대를 모두 추적하고 그 가운데 거창에서 대구로 간 택시 딱 1대를 추려내 “키 170㎝ 마른 남성을 태웠다”는 택시기사의 진술도 받아냈다. 윤씨 시체를 발견한 직후인 4월 23일 박씨 휴대폰에서 보험금 청구에 대해 문의한 기록도 찾았다. 범행 일주일 뒤, 그러니까 아직 윤씨 시체가 발견되기 전에 박씨가 쓴 휴대폰 메모장엔 이런 글귀도 있었다. “여긴 지옥이다. 여기서 살아남으면 곧 천국이다.”

하지만 이 모든 건 정황증거일 뿐, 살인의 직접 증거가 없었다. CCTV영상은 그냥 걸어가던 장면뿐이다. 범행 도구도 못 찾았다. 그 때문에 처음엔 경찰이 신청한 구속영장을 검찰에서 잘 받아주려 하지 않아서 진땀을 뺐다. 뾰족한 둔기로 추정되는 범행 도구와 범행 당시 윤씨가 입은 옷을 찾으려 15m 폭의 강을 막고 대형 펌프를 동원해 물을 다 빼낸 뒤 수색작업까지 했으나 허탕이었다. 박씨는 “강물에 버렸다”고 했다가 “밭에다가 숨겼다”고 계속 진술을 뒤집었다.

박씨는 혐의를 극구 부인했다. 체포 초기엔 다 인정하는 듯 하더니 이내 “대구에는 갔지만 나중 일은 모른다”고 했다. “평소에 윤씨에게 우울증이 있고 자살충동이 있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다”고도 했다. 윤씨의 죽음을 자살로 몰아가려는 허위 진술이었다. 법원에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으러 가서는 “대구에 간 적도 없는데 경찰의 가혹행위 때문에 거짓 자백했다”고 하더니 화장실에서 자해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나중에는 말다툼 끝에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며 상해치사를 주장하기도 했다.

◇끝까지 혐의 부인 … 법원은 무기징역 선고

법정에서 박씨는 결국 무죄 주장을 고집했다. 살인의 직접 증거가 없다는 게 자신에게 유리하다는 걸 알아서다. 아니면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죽마고우를 꼬여내 죽였다는, 그 사실을 인정하기엔 너무 죄책감이 커서인 지도 모른다. 박씨는 “사건 당시 거창 집에서 자고 있었고, 범행이 일어난 대구에는 가지도 않았으며, 부모님이 거창에서 식당을 하고 있었으므로 보험금을 노리고 가장 친한 친구를 살해할 이유가 없다”고 거듭 주장했다.

하지만 1심 법원은 2015년 11월 박씨의 살인 혐의를 인정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CCTV 화면 속 걸음걸이를 보고 박씨라고 추정한 ‘법보행분석 결과’를 증거로 채택됐다. 그 시간 대에 그 길을 걷던 이들이 없었으니, 제3의 인물이 나타날 가능성도 드물었다. 무엇보다 사건 발생 두 달 전 박씨와 윤씨가 체결한 보험계약이 결정타였다. 15년 우정을 미끼로 삼은 보험 범죄였다.

[저작권 한국일보]박씨 무죄 주장 vs 법원 무기징역 선고 판단/ 강준구 기자/2019-06-24(한국일보)
[저작권 한국일보]박씨 무죄 주장 vs 법원 무기징역 선고 판단/ 강준구 기자/2019-06-24(한국일보)

박씨는 항소했지만 2016년 5월 2심, 같은 해 8월 상고심도 모두 박씨에게 무기징역형을 내렸다. 법원은 “범행을 위해 사전에 치밀한 준비와 계획을 했고, 피해자를 무참히 살해하고도 반성하지 않은 채 자백과 번복을 반복하면서 교묘한 변명으로 범행을 은폐하려 하고 있다”며 “피고인이 사망보험금을 수령하기 위해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인 피해자를 살해했다는 점에서 그 책임이 더욱 무겁다”고 지적했다. 윤씨가 믿었던 우정도 그렇게 살해당했다.

대구ㆍ의성=박진만 기자 bpb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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