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민 전 수사기획관, 검찰 수사단에 진술했는데도 엉터리 발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성접대 의혹 수사를 지휘했던 경찰 간부가 당시 박근혜 청와대로부터 수사 외압을 분명히 받았다고 증언했다. 이 간부는 법무부 검찰 과거사위원회 진상조사단 등에 모든 사실을 진술했는데도 외압이 없었다고 발표한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반박했다.
김 전 차관 사건 초기 경찰청 수사기획관이었던 이세민 전 경무관은 17일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청와대의 외압 행사 의혹을 구체적으로 밝혔다. 이 전 경무관은 진상조사단과 김 전 차관 관련 검찰의 특별수사단에 이런 내용을 증언했는데도 “외압이 없었고 김 전 차관은 무혐의”라는 발표를 듣고 인터뷰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이 전 경무관에 따르면 경찰이 김 전 차관의 성접대와 이를 촬영한 동영상의 존재를 알게 된 건 2013년 1월이었다. 그러나 관련자들은 상대가 검찰 고위층이고, 서울 서초경찰서에 신고했는데 무혐의가 됐다며 검찰, 경찰을 믿지 않아 진술을 거부했다. 경찰들은 관련자들을 찾아가 설득했고 2월이 넘어서면서 “수사에 착수하면 협조하겠다” 정도의 신뢰를 쌓을 수 있었다.
그러던 중 3월 2일 청와대에서 먼저 경찰청 수사국장에게 전화를 해왔다. ‘김 전 차관에 관련한 내용을 수집하거나 갖고 있는 게 있느냐, 내사나 수사에 착수했느냐’는 질문이었다고 한다. 이 전 경무관은 “‘내사나 수사 단계는 아니지만 내용이 상당히 심각하다. 동영상이 시중에 유포되고 있는데 나오는 인물이 현직 대전고검장’이라는 내용을 보고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후에도 수차례 청와대 정무수석실, 사회안전비서관에게 대면, 전화, 팩스 보고를 했고, ‘이런 사람을 고위공무원에 임명하면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의견도 전했다”고 덧붙였다. 당시 정무수석은 이정현 자유한국당 의원, 사회안전비서관은 이후 경찰청장 자리에 앉은 강신명씨였다.
경찰의 문제 제기에도 3월 13일 김 전 차관 내정 사실이 발표됐다. 문제를 제기해온 경찰들은 동영상 유출 경위, 내용, 등장인물 등에 대한 보고서를 만들어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재차 보고를 했다. 한 매체가 이를 단독으로 보도했는데도 김 전 차관은 15일 임명됐다.
이 전 경무관은 김 전 차관 내정 이전부터 청와대 외압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3월 초 경찰청 수사국장실에 찾아온 청와대 행정관이 자신과 수사국장이 있는 자리에서 “김학의라는 사람이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리면서) 관심 사안이다”라며 “이 사안이 내사, 수사로 진행되면 굉장히 부담스럽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 전 경무관은 “엄지손가락은 VIP(박근혜 전 대통령)를 의미하며, 수사하지 말라는 뉘앙스로 들었다”고 밝혔다.
김 전 차관이 임명되면서 이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에 대한 보복이 시작됐다. 경찰청장이 즉각 경질됐고, 이 전 경무관 자신은 비수사 부서로 좌천됐다. 수사를 진행하려 했던 다른 경찰들도 뿔뿔이 흩어졌다. 이 전 경무관은 “새로 부임한 이성한 경찰청장이 ‘남의 가슴에 못을 박으면 벌 받는다’는 얘기를 했다. 남은 김학의를 얘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김 전 차관에 대한 검찰 수사와 진상조사가 얼마나 허술하게 진행됐는지 언론에 알리면서 자신을 부당 전보한 경찰 전 수뇌부 등에 대한 소송도 준비하고 있다.
허정헌 기자 xscop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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