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6월 21일, 덴마크령 그린란드가 자치권 확대를 위한 전체 주민투표를 실시했다. 완전 독립의 교두보를 마련하기 위한 투표에 총 유권자의 72%인 2만8268명이 참여, 75.5%가 자치 확대에 찬성했다. 반대도 23.6%(6,663명)였지만, 그들이 반대한 건 엄밀히 말하면 자치권 확대가 아니라 궁극적인 독립이라 봐야 한다. 법적 구속력 없는 투표였지만 덴마크 의회는 이듬해부터 주민 의견을 존중, 외교와 국방ㆍ통화권을 제외한, 치안과 사법권, 해안 경비 수준의 제한적 지역방위권 등 자치를 대폭 보장했다. 그린란드는 덴마크어가 아닌 이누이트의 방언인 그린란드어를 공용어로 지정했고, 6월 21일을 자치 기념일로 선포했다.
이누이트와 바이킹의 오랜 터전인 광막한 얼음 땅 그린란드에 한스 에게데(Hans Egede)라는 덴마크 선교사와 모라비아 선교단이 정착한 것은 1721년이었다. 하지만 덴마크가 그린란드를 식민지로 지배한 것은 나폴레옹 전쟁 직후인 1814년부터다. 2차대전 중 덴마크가 나치에 점령되면서 주미 덴마크 대사는 미국과의 협정을 통해 그린란드의 방위 통제권을 미국에 이양했고, 미국은 1941년 4월부터 현지에 군 공항과 군사기지를 설치했다. 전후 미국은 알래스카처럼 그린란드도 사들이려 했지만, 덴마크가 거부했다. 그린란드는 북극권의 지정학적 가치 외에도 얼음층 아래에 묻힌 막대한 양의 석유와 희토류 등 광물자원의 보고다.
지구온난화로 얼음층이 얇아지면서 그린란드(의 자원)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이 커지기 시작했다. 이명박 정부가 ‘신 북방 이니셔티브’를 운운하며 눈독을 들인 것도 그린란드의 자원이었다. 한 해 정부 예산의 3분의 2를 덴마크 보조금으로 충당하는 그린란드 자치 정부 및 시민들이 그 돈을 포기할 각오로 자치 확대-독립을 주장해 온 배경에도 자원 개발을 통한 경제 다각화와 자립의 희망 혹은 자신감이 있다.
자치-독립에 반대하는 이들이 염려하는 것도, 덴마크 보조금을 잃은 뒤 닥쳐올 아직은 불안한 미래다. 2017년 주민투표 결과 주민 삶의 질 저하를 동반한 독립에는 78%가 반대했다. 한스 에게데 정착 300주년이 되는 2021년을 기점으로 완전 독립을 추진하던 그린란드 자치 정부 및 의회도 현재 잠시 주춤거리는 상태다. 최윤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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