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정부, 대만 여행 갔다 애인 죽인 자국인 처벌 위해 송환법 추진
“대만·중국에도 범죄인 보낼 수 있게”실종사건 경험 시민들 감정 폭발
16일 홍콩에서 범죄인 인도 법안 제정에 반대하는 시위가 열리고 있다. 홍콩=AP 연합뉴스

홍콩 정부의 사실상 항복 선언을 이끌어낸 범죄인 인도 법안 반대 시위는 홍콩 인구(약 740만명)의 7분의 1 정도인 100만명 이상이 한꺼번에 거리로 뛰쳐나왔을 만큼 거대한 분노의 물결이었다. 시위 명분, 진행 경과 및 결과로 보아 홍콩 정치사에 한 획을 그은 사건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그런데 이처럼 중대한 정치적 사태를 부른 발단은 젊은 연인들 사이에 벌어진 비극적인 치정 살인사건이었다.

1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2월 8일 홍콩인 남성 찬퉁카이(陳同佳ㆍ20)는 한 살 연상의 여자친구 판샤오잉(潘曉穎ㆍ당시 20세)과 함께 대만 타이베이로 ‘밸런타인데이 여행’을 떠났다. 하지만 밸런타인데이 이틀 후인 16일 밤, 두 사람은 숙소에서 크게 싸웠다. 판샤오잉이 찬퉁카이에게 ‘뱃속에 있는 아이의 아빠는 옛 남자친구’라고 고백하고, 또 다른 남성과의 성관계 장면이 담긴 동영상을 보여 줬기 때문이다. 격분한 찬퉁카이는 이튿날 오전 판샤오잉을 폭행한 뒤 목을 졸라 살해했고, 시신을 여행가방에 넣어 유기하고선 귀국했다.

판샤오잉의 실종 신고가 접수되자 찬퉁카이는 “대만에서 싸운 다음에 헤어졌다”고만 답했다. 그러나 대만 경찰은 폐쇄회로(CC)TV 추적을 통해 찬퉁카이를 용의자로 지목했고, 이 같은 연락을 받은 홍콩 당국은 같은 해 3월 13일 그를 체포해 범행 일체를 자백받았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범행은 확실한데, 범인을 처벌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던 것이다.

일단 찬퉁카이를 범행 장소인 대만으로 보낼 수는 없었다. 홍콩과 대만 간 범죄인 인도 조약이 맺어지지 않은 탓이다. 그렇다고 홍콩에서 사법처리를 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1997년 중국 반환 이후에도 2047년까지 사법자율권을 보장받은 홍콩은 영국 속지주의를 택하고 있어 타국에서 발생한 범죄를 처벌할 순 없기 때문이다. 찬퉁카이에게 적용된 죄는 여자친구의 신용카드 사용과 관련한 돈세탁 혐의가 고작이었고, 그는 지난해 4월 징역 29개월형을 선고받았다.

홍콩 정부는 이를 계기로 올해 3월 대만과 중국 본토를 포함, 범죄인 인도 조약 미체결 국가로도 범죄인의 송환을 가능케 하는 법안을 마련했다. 그러나 이는 2015년 이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사생활 비판 내용이 담긴 서적을 출판하려 했던 홍콩 시민 5명의 실종 사건을 목도했었던 홍콩인들의 반중(反中) 정서를 폭발시켰다. 사적인, 매우 사적인 치정에서 비롯된 살인사건이 뜻하지 않은 정치적 격동이라는 ‘나비 효과’를 일으킨 셈이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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