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인 인도법’ 처리 강행을 추진한 캐리 람(62ㆍ林鄭月娥) 홍콩 행정장관은 효율적이고 실용적인 행정가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일반 시민의 삶에 무관심한 정치인, 중국의 앞잡이 정치인으로 간주돼 큰 인기를 끌지 못했다.
지난 2014년 홍콩 도심을 점거한 채 79일 동안 이어진 대규모 민주화 시위인 ‘우산 혁명’에 대해 펼친 강경 진압 작전이 이 같은 그의 이미지를 잘 보여준다. 당시 홍콩 야당과 시민단체는 소수의 선거위원회가 행정장관을 뽑는 이른바 ‘체육관 선거’에서 탈피, 완전 직선제를 실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시민들은 여기에 뜨겁게 호응했다. 시위 일일 최다 참가 인원이 50만명에 달할 정도로 직선제에 대한 시민들의 열망은 컸다.
하지만 당시 정무사장(장관)이었던 람 장관은 홍콩 시민들의 목소리를 무시한 채 시위대 강제 해산에 나섰다. 심지어 해산에 불응하는 시위 참가자 1,000여명을 잡아들이기도 했다. 영국 마거릿 대처 전 총리를 빗대어 람 장관에게 ‘홍콩판 철의 여인’이라는 별칭이 붙은 계기이기도 하다.
람 장관의 이 같은 업무 추진 방식은 중국 지도부를 흡족하게 했다. 중국 정부는 이후 행정장관 선거에 출마한 그를 전폭 지원했다. 당시 여론조사에서 람 장관은 30%대 지지율로, 경쟁자였던 존 창(曾俊華) 전 재정사장(재정장관)의 지지율 50%에 크게 못 미쳤지만 간접선거 덕에 2017년 3월 행정장관에 선임됐다.
예상대로 행정장관 취임 후 그는 내각을 친중국 인사들로 채웠다. 국가보안법이나 중국 국가(國歌) 모독자를 처벌하는 ‘국가법’ 제정을 추진하는 등 친중국 정책으로 일관했다. 또 반(反)중국 성향의 홍콩민족당 강제 해산에 나서기도 했다. 거침없는 친중국 행보를 보이는 ‘철의 여인’ 앞에 야당과 시민단체는 무기력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번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추진을 계기로 상황은 급반전하는 분위기다. 람 장관이 2022년 6월 30일까지인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물러날 것이란 전망이 짙다. 그는 한 홍콩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자식이 매번 요구하는 것을 들어주다가는 자식을 망치게 된다”는 요지의 발언을 해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온라인에선 그간 비교적 잠잠하던 가족의 국적 문제까지 논란이 일고 있다. 캐리 람이 영국 유학 당시 결혼한 영국인 남편은 현재 중국 국내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며, 두 아들은 영국 국적을 유지하고 있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홍콩의 행정수반으로서 적절하지 않다는 이야기다.
풍전등화와도 같은 처지의 람 장관을 더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지지 기반인 친중파 진영에서도 그에 대한 비판의 소리가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람 장관과 친중파 의원의 회동에 참석한 한 의원은 “그에 대한 비판과 불만이 쏟아져 나왔다. 캐리 람은 법안을 강행한 자신의 행동이 벽에 머리를 박는 것처럼 어리석었다고 사과해야 했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말했다.
람 장관이 물러날지는 현재 미지수다. 이번 사태 여파로 11월 구의회 선거와 내년 9월 입법회 선거에서 친중파 진영이 패배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지만, 그가 사퇴할 경우 야당과 시민단체의 기세를 올릴 수 있는 만큼 중국 정부가 절대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김진욱기자 kimjinu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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