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현지시간) 인도의 대미 관세 인상 발표로 미국의 무역 분쟁의 전선이 넓어지고 있다. 미국이 인도에 부여하던 개발도상국 일반특혜관세제도(GSP)를 지난 5일 중단하자, 인도가 구체적인 보복 조치를 단행한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중국ㆍ멕시코 등을 상대로 전 방위 무역전쟁을 한창 벌이는 상황에서, 중국 견제를 위해 핵심 우방으로 공을 들여온 인도마저 무역 마찰로 관계가 소원해지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트럼프 정부가 주도하는 무역 갈등 국면이 과연 어디까지 확산될지 더욱 불투명해지면서 국제 시장의 우려는 커지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인도 정부는 아몬드와 사과, 렌즈콩 등 28개 미국산 제품에 대해 16일(현지시간)부터 관세를 올릴 것이라고 밝혔다. 외신은 인도의 이번 조치가 미국이 올 3월 발표한 GSP 중단 계획에 대한 보복이라고 보고 있다. 인도는 그간 미국의 GSP 제도의 가장 큰 수혜국으로, 2017년 기준 미국에 약 56억 달러(약 6조6,388억원)를 무관세로 수출했다.
관세 인상은 이번에 이뤄졌지만, 지난해부터 이미 양국은 무역 마찰의 단계를 밟아왔다. 2018년 초 미국이 인도산 알루미늄ㆍ철강 관세를 인상하자, 인도 정부는 6월부터 보복관세를 준비했다. 이후 미국의 요청에 따라 수차례 유예하다가, GSP가 이달 5일부로 중단되자 관세 부과를 개시한 것이다. 세계무역기구(WTO)는 대상이 되는 미국산 물품 규모가 약 2억4,100만달러(약 2,857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한다.
트럼프 행정부가 벌이는 무역전쟁의 핵심은 ‘불공정 무역’, 즉 미국만 손해를 보는 구조를 뜯어고치겠다는 판단이다. 인도와의 무역 마찰도 핵심은 같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의 대인도 무역적자는 213억달러로 10년 전에 비해 3배 가까이 커졌다. 트럼프 행정부는 농업 분야를 필두로 한 인도의 높은 대미 관세와 아마존 등 미국 기업들에 대한 인도 정부 규제에 불만을 가져왔다. 또한 양국은 인도의 이란산 석유 수입, 러시아산 대공미사일 S-400 구매 등의 계획을 두고도 갈등을 빚어왔다.
영국 BBC 방송과 파이낸셜타임스(FT) 등은 이번 조치로 미국-인도 간 정치 안보 유대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고 전했다. 다만 싱가포르 국립대의 C. 라자 모한 남아시아 연구소장은 FT에 “비관론자들에게 이번 조치는 무역전쟁의 시작일 것”이라면서도 “낙관론자 입장에서는 인도의 이번 조치가 양국의 무역 파트너십을 변화시키고, 안보 동맹을 강화할 새 틀을 짤만한, 진지한 협상의 장을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 인도는 대미 관세보복 조치를 발표하면서도, 언행에는 미국을 자극하지 않도록 신중한 모양새다. 현지 매체 힌두스탄타임스는 한 인도 당국자가 “이번 인상은 지난해 철강 관세에 대한 대응이지 GSP 때문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고 전했다. 경제 부흥을 핵심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에게도 최대 수출국인 미국과의 전면적 무역전쟁은 큰 타격이다.
미국의 입장에서도 인도와의 무역 마찰은 연일 강경책을 밀어붙이는 중국과는 결이 다른 듯하다. ‘인도 태평양 전략’ 등 이미 중국 견제를 위해 인도와 공고한 안보 동맹을 맺고 있을 뿐 아니라, 아마존ㆍ구글 등 미국 대표 기업들이 13억 인구 시장인 인도에 이미 투자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양국 무역 마찰은 일단 이달 말 향방을 드러낼 전망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오는 25, 26일 인도를 찾아 GSP 등 현안을 논의할 예정이고, 이달 말 일본 오사카(大阪)에서 열릴 G20 정상회의에서도 양국 정상이 회동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폼페이오 장관은 최근 “우리는 여전히 대화의 문을 열어놓은 상태로 우리의 친구 인도가 무역장벽을 낮추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피유시 고얄 인도 상공부 장관도 미국의 GSP 중단 조치에 대해 “수출업체의 생사가 달릴 정도의 문제는 아니다”라면서 미국과 협력 방안을 찾겠다고 말했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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