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운 리더십으로 단합 이끌어… 선수들 “감독 위해 뛰어보자” 열의
2019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에서 준우승으로 한국축구 사상 최고의 순간을 만든 정정용(50) 대표팀 감독은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기 전까지 “내 탓이오”라며 계속 자책했다.
16일(한국시간) 대회 결승전에서 우크라이나에 1-3으로 패한 뒤 “부족한 내 전술 때문”이라며 아쉬워했던 그는 뜬눈으로 밤을 지샜다. 귀국 당일 마지막 현지 아침 식사 자리도 처음으로 걸렀다. 정 감독은 “선수들을 볼 수가 없었다”며 “좀 더 빛날 수 있었을 텐데, 선장인 제 욕심으로 인해 거의 다 온 도착지에서 조금 방향이 틀어져 미안하다”고 거듭 사과했다.
하지만 한국축구가 FIFA 주관 대회에서 준우승을 거둔 쾌거엔 유소년 축구 육성에 인생을 건 정 감독의 노력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다. 또한 무명 선수 출신 정 감독의 성공담은 확실한 전문성과 실전 능력을 갖추면 비주류도 얼마든지 주류로 올라설 수 있다는 걸 입증했다.
사실 스타 출신 프리미엄이 없으면 대표팀이나 프로 팀 감독 선임이 쉽지 않다. 현역 시절 철저한 무명이었던 정 감독 역시 2년 전 한국에서 열린 U-20 월드컵 당시 사령탑 후보 중 한 명이었지만 신태용 감독에게 이름값에서 밀렸다.
청구중ㆍ고, 경일대를 거쳐 1992년 실업 축구 이랜드 푸마의 창단 멤버로 6년간 뛰었던 정 감독을 기억하는 축구 팬은 거의 없다. 이른 나이에 부상까지 겹쳐 28세에 선수 생활을 접었다. 하지만 정 감독은 2006년부터 대한축구협회 유소년 전문지도자로 10년 넘게 한 우물을 팠다. 고향 팀 대구FC의 부름을 받아 1년간 프로 팀 수석코치를 맡았던 2014년을 제외하고 모든 연령별 대표팀을 지도했다. 유소년 축구 시스템의 근간이 된 ‘골든 에이지’ 프로그램도 그의 손을 거쳤다.
한국 축구의 미래들을 키우기 위해 정 감독은 꿋꿋이 전임지도자 자리를 지켰다. 2014년 골든 에이지 프로그램 도입 후 전문지도자 처우가 프로 팀 코치 또는 2군 감독 수준(6,000만~7,000만원 추정)으로 올라왔지만 그 전까지 대우는 썩 좋지 않았다. 그런데도 정 감독은 “내가 잘해야 후배 전임지도자에게도 길이 열린다”는 책임감으로 버텼다.
결국 정 감독의 고집이 늦게 꽃을 피웠다. 선수들은 12년간 연령별 유소년 팀을 모두 맡아 확고한 지도 철학과 선수 선발 기준을 가진 정 감독을 신뢰했다. 선수들이 ‘마법의 노트’라고 부를 만큼 상대 전략과 우리 팀 선수들이 특정 상황마다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등이 상세하게 담긴 정 감독의 전술 노트도 시험공부 하듯 머리 속에 넣은 이유도 마찬가지다.
또 수직적인 지도자와 선수 사이가 아닌 수평적인 관계에서 선수들이 마음 놓고 말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대표팀 막내 이강인(18)은 대회 기간 “못 잊을 감독님”이라고 했고, 미드필더 고재현(20)은 “(선수들끼리) 감독님을 위해 뛰어보자는 말도 했다”고 밝혔다.
온화하고 부드러운 정 감독의 리더십은 2016년 급성 백혈병으로 별세한 고 이광종 전 U-20 대표팀 감독을 떠오르게 한다. 고 이 전 감독은 유소년 전임지도자 1세대로, 한국 축구의 주축들을 키워낸 ‘육성 전문가’였다. 정 감독처럼 선수 시절 빛을 못 보고 지도자로도 지명도가 높지 않았지만 다양한 연령별 대표팀을 거쳐 2013년 U-20 월드컵 8강,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지휘했다.
전임지도자 곁에서 오랜 시간 호흡을 맞췄던 김종윤 축구협회 대회운영 실장은 “이 감독과 정 감독이 같은 팀을 맡은 적은 없지만 평소 정 감독은 ‘광종이 형의 노하우를 많이 배워야겠다’는 얘기를 자주 할 정도로 각별하게 생각했다”며 “정 감독이 전임지도자로 처음 들어왔을 때는 이 감독이 최고참으로서 막내인 정 감독님을 많이 챙겼고, 정 감독은 이 감독을 잘 따랐다”고 설명했다.
김지섭 기자 on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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