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정상을 바라보는 한국 20세 이하(U-20) 축구대표팀이 이번 대회에서 보인 변화무쌍한 공격 전술 비책은 정정용(50) 감독이 선수들에게 나눠준 ‘전술노트’에서 시작됐다. 지난해 11월 인도네시아에서 끝난 19세 이하(U-19)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십 대회 소집기간에 배포된 이 노트엔 일일이 셀 수 없을 정도의 분량의 전술이 빼곡히 적혀 있다는 게 선수들의 설명이다.
책보단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보는 데 익숙한 그들이지만, 묘하게 어른 손가락 하나 두께로 제본된 투박한 형태의 이 노트엔 선수들이 푹 빠져 지냈다. 여기에 적힌 포메이션과 이를 바탕으로 한 세트피스, 측면공격 전략 등이 술술 이해됐고, 덕분에 거의 모든 선수가 달달 외우는 것도 모자라 ‘(전술 사례를)더 달라’고 요청했을 정도라는 게 선수들 얘기다. 선수들이 정 감독에게 이 노트를 반납할 땐 여기저기 빨간 줄과 메모가 가득했다고 한다.
정 감독이 이끄는 U-20 축구대표팀이 16일(한국시간) 오전 1시 폴란드 우치 스타디움에서 펼칠 우크라이나와 결승에서도 이 전술노트의 힘을 빌릴 수 있을지 주목된다. 상대는 이번 대회 6경기에서 10득점 3실점을 기록하며 공격과 수비에 걸쳐 탄탄한 전력을 보유하고 있다. 실제 이들을 상대로 득점을 기록한 팀은 미국, 나이지리아, 파나마 정도로 모두 16강 이상의 성적을 거둔 팀들이다.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2골 이상 넣은 팀은 없다.
그럼에도 선수들은 정정용표 ‘신비한 전술사전’의 힘을 끝까지 믿는다. 우치 훈련장에서 14일 만난 대표팀 미드필더 고재현(20ㆍ대구)은 정 감독의 전술노트를 두고 “거의 마법노트 수준”이라며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움직이라는 글과 그림이 상세히 적혀 있는 걸 보고 정 감독이 우릴 얼마나 생각하는지, 그리고 이번 대회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 알 수 있었다”며 필승 다짐을 전했다.
실제 선수들은 대부분 이번 대회에서 전술노트 내용들을 다양하게 적용해 왔다고 한다. 다른 선수들보다 뒤늦게 대표팀에 합류해 전술노트를 접할 시간이 적었던 이강인은 기존 선수들이 익혀둔 전술을 응용한 ‘변형 플레이’로 팀을 더 강력하게 만들었단 게 고재현 얘기다. 그는 “(이번 대회에서) 노트에 있던 전술을 거의 다 써먹었다”며 “우리 팀 전술이(노트를 바탕으로) 2년 전부터 준비가 돼 있었기 때문에 이번 대회에선 자신감과 간절함까지 더해져 좋은 성적이 난 것 같다”고 했다. 정 감독이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자주 했던 “하고자 했던 게 잘 맞아떨어졌다”는 얘기도 모두 철저히 준비된 전술이 잘 먹혀 들어갔단 걸 의미한다.
우치(폴란드)=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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