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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빵과 서커스, 포퓰리즘

입력
2019.06.14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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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회원국 정상들이 집행위원장을 비롯한 차기 EU 지도부 인선 작업을 위해 벨기에 브뤼셀에서 EU 정상회의를 연 지난 달 28일 시위대가 극우 및 우익 정당의 부상에 대해 우려를 표출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포토아이
EU 회원국 정상들이 집행위원장을 비롯한 차기 EU 지도부 인선 작업을 위해 벨기에 브뤼셀에서 EU 정상회의를 연 지난 달 28일 시위대가 극우 및 우익 정당의 부상에 대해 우려를 표출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포토아이

전두환 정권이 권력 장악을 시작한 1980년대 초반에 ‘3S’ 정책이 있었다. 민주화를 향한 국민들의 폭발적인 관심을 엉뚱한 곳으로 돌리려는 의도였다. 3S는 스포츠(sports) 섹스(sex) 영화(screen)를 말한다. 1980년 6월에는 미스 유니버스 선발대회가 세종문화회관에서 개최됐고, 82년에는 프로야구가 6개 구단으로 출범했다. 그 해 ‘애마부인’이 개봉됐을 때 서울극장에 인파가 너무 몰려 극장 유리창이 깨질 정도였다. 서울 봉천동과 신촌 등 대학가와 유흥가를 중심으로 여관에서는 포르노 상영이 상시화했다.

□ 정권 유지를 위해서는 먹거리와 볼거리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 로마의 통치술이었다. 시민이 배가 고프면 난리가 나고, 웬만큼 배가 차면 오락거리가 있어야 불평불만이 줄어든다. 로마 황제들은 시민에게 이른바 ‘빵과 서커스’ 제공에 혈안이었다. 그래서 로마는 밀과 검투용 맹수를 아프리카 등지에서 구했다. 서커스는 영화 ‘벤허’에서 나오듯 검투사들의 혈투가 대표적이고 시민들의 휴식을 위한 공공욕장도 필요했다. 로마에 원형 경기장과 목욕탕 유적이 많은 이유다. 이 즈음 포퓰리즘(populism)이라는 용어가 생겼다.

□ 포퓰리즘의 효시는 로마시대 호민관이던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 정책이라고 한다. 건축학자로 로마 번영사를 다수 저술한 나카가와 요시타카의 저서 ‘빵과 서커스’에 따르면 그라쿠스는 기원전 123년 로마 시민에게 곡물을 저렴하게 팔도록 하는 곡물법을 시행하면서 빈민 구제를 꾀했다. 하지만 반대세력의 공격을 받고 급기야 ‘공화국의 적’으로 몰리자 이에 저항하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자결했다. 하지만 그라쿠스는 곡물의 안정적인 수급이 국가 발전의 필수 조건임을 간파했고, 이후에도 곡물법은 폐기되지 않고 이어졌다.

□ 포퓰리즘의 어원은 로마 시민을 뜻하는 포풀루스(populus)로, 포플러 나무도 같은 어원에서 나왔다. 프랑스의 앙시앵레짐(구체제)은 이 나무를 두려워했고, 급진주의자들은 이 나무 심는 것을 저항으로 여겼다. 지금 남미에서는 급진적 포퓰리즘이 횡행하고, 5월 유럽의회 선거에서는 난민 혐오를 부추기는 극우 포퓰리즘 정당들이 득세했다. 포퓰리즘은 일시적으로 대중의 욕구를 충족시키지만 결국 정권의 덫으로 변하거나 국가 쇠락을 초래했다.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나 나치 치하 독일의 최후가 비참했던 것을 떠올리면 된다.

조재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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