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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C] 상품이 된 연예인 인성

입력
2019.06.13 18:41
수정
2019.06.13 18:54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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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5˚C’는 한국일보 중견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MBC 예능프로그램 '나혼자 산다'의 한 장면. 리얼 예능 프로그램의 유행으로 연예인의 사생활은 상품이 됐다. 방송 캡처
MBC 예능프로그램 '나혼자 산다'의 한 장면. 리얼 예능 프로그램의 유행으로 연예인의 사생활은 상품이 됐다. 방송 캡처

요즘 인성 교육의 성지로 떠오르는 곳이 있다. 학교가 아닌, 연예기획사 JYP엔터테인먼트(JYP)다. JYP 소속 연예인과 직원은 여성이 술을 접대하는 곳에 가면 회사에서 쫓겨난다. JYP를 세운 가수 박진영이 정한 사규다. 박진영은 연습생을 교육할 때 ‘진실’, ‘성실’, ‘겸손’을 강조한다. 박진영이 여러 방송에서 밝힌 인재상은 온라인에서 새삼 널리 공유되고, 그를 강연자로 찾는 곳도 부쩍 늘었다고 한다. ‘버닝썬 사태’로 드러난 일부 연예인의 도덕 불감증에 대한 반작용일 게다.

그들이 환호하는 대상은 박진영의 K팝 전략이 아닌 인성에 대한 신념이다. 관습을 벗어난 파격으로 즐거움을 만드는 게 본령인 연예기획사에 인성은 새로운 상품으로 떠올랐다. 인성은 도덕의 영역에 가깝다. 연예인 도덕의 상품화라니, 영ㆍ미권에선 찾아보기 어려웠던 풍경인 걸 고려하면 한국의 대중문화 생태계는 분명 특이하다.

인성의 상품화, 들여다보면 요즘 추세다. 리얼리티 예능의 유행이 큰 몫을 했다. 연예인들은 MBC 예능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 등에 출연해 무대 혹은 카메라 뒤의 사생활을 공개한다. 방송에서 화장을 지운 연예인의 일거수일투족이 공개되면서 사람들의 관심은 그의 사생활에 더욱 쏠렸다. 연예인은 끼가 아닌 인성으로 관심을 얻는다. 보호돼야 할 사생활은 없어졌고, 시청자의 인성에 대한 품평은 늘었다. 연예인의 사생활이 ‘시장’에 나오면서 생긴 변화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인성을 ‘① 사람의 성품 ② 각 개인이 가지는 사고와 태도 및 행동 특성’으로 정의한다. 연예인은 유명인이지, 공인은 아니다. 그렇다면 유명인이 지닌 개인적인 성품과 행동은 어디까지 공적 영역 제단에 올려져야 할까.

기준이 없는 탓에 대중문화계에선 웃지 못할 상황들이 속출한다. A씨는 그의 연인이었던 아이돌그룹 위너 출신 남태현의 ‘양다리’를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폭로했다. ‘다른 피해자가 생기는 거 더 못 본다’는 내용과 함께였다. A씨도 연예인이다. 연예인의 SNS는 더는 사적 공간이 아니다. 그렇다면 누군가의 양다리는 ‘공적 공간’에 폭로돼야 할 성질의 문제인가. 여론의 집중 포화를 받은 남태현은 출연 중인 공연에서 하차했다. 자업자득, 그를 동정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짚고 싶은 건 A씨의 폭로 방식이다. 사생활을 ‘여론재판’에 세워 응징한 A씨의 폭로는 정당한지 의문이다.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이 뒤엉켜버린 연예계에서의 ‘인성 재판’은 그래서 때론 처절하다. 어떤 아이돌 가수는 그의 아버지가 진 빚이 폭로돼 부모의 이혼과 생부와의 절연을 세상에 알려야 했다. 신인 남성 아이돌그룹의 한 멤버는 최근 팬덤에서 ‘다른 여성 아이돌그룹 멤버와의 사이를 해명하라’는 요구까지 받았다. 두 사람이 술자리를 함께 한 사진이 온라인에 올라와 벌어진 일이다. 요즘 같은 시대에 연예인으로 흠결 없이 살아남으려면 부모가 진 빚이 없어야 하고, 타인과의 건전한 관계를 늘 증명 받아야 한다. 찬란한 윤리의 시대인가, 과도한 도덕 검증의 시대인가.

사소한 데 분노하지 말란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버닝썬 사태는 인기를 악용한 일부 연예인의 권력형 범죄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최근 잇따라 제기된 학교 폭력 폭로는 인권 유린의 측면에서 더 날을 세워 그들의 사생활에 주목 해야 한다.

하지만 ‘구분’해야 한다. 거대한 세상의 부조리한 권력엔 분노할 자유가 허락되지 않은 탓일까. 연예계는 ‘정의구현’의 장이 됐다. 최근 만난 K팝 연예기획사 고위 관계자는 “요즘 연습생을 뽑을 때 끼보다 인성을 더 중요하게 본다”고 말했다. 재능(끼)보다 도덕(인성)이라니. 연예인의 무해함에 대한 집착이 섬뜩한 건 왜일까.

양승준 문화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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