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핵 합의를 둘러싸고 대립 중인 미국과 이란 간 중재를 자처하고 나선 가운데 이란은 대미 강경론을 고수했다. 이란은 대화에 앞서 미국의 원유금수 조치 중단을 요구했지만 미국이 이란에 대해 압박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는 경제 제재를 중단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전망이 많다. 이에 일본 정부는 이번 방문의 목적이 미ㆍ이란 중재를 위한 것은 아니라며 한발 물러서는 모양새다.
아베 총리는 13일(현지시간) 오후 테헤란에서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이니 최고지도자와 회담을 가졌다. 하메이니에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의향을 전달하면서 대화를 포함한 긴장 완화를 위한 대응을 촉구했다고 NHK가 보도했다. 또 2015년 이란이 체결한 핵 합의의 착실한 이행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베 총리는 회담 후 취재진과 만나 “하메이니가 ‘핵무기의 제조도 보유도 사용할 의도도 없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란 역시 미국과의 무력 충돌을 원하지 않으며 핵 합의 폐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도 현 중동지역의 긴장은 미국의 일방적인 핵 합의 탈퇴에 따른 것임을 분명히 했다. 미국의 경제 제재에 대해서도 강경한 태도를 고수하고 있어 아베 총리의 중재 외교 성과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전날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과 정상회담 이후 공동기자회견에서 “무력 충돌은 피해야 한다”며 “중동의 평화와 안정은 세계 전체의 번영에 필수적이다. 아무도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로하니 대통령은 “지역 긴장의 원인은 미국의 경제 전쟁(제재)에 있다”며 “우리는 미국과의 전쟁을 바라지 않지만 만약 이란에 대한 공격이 있으면 엄정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로하니 대통령은 아베 총리에게 원유금수 조치 중단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해 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지(時事)통신은 “보수 온건파인 로하니 대통령조차 태도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며 “일본이 미국과 이란 사이에 끼일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이에 일본 정부 대변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정례 브리핑에서 “아베 총리의 이란 방문이 미국과 이란 간 중재를 의도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면서 “(이번 회담에선) 매우 의미 있는 의견 교환이 있었다고 평가한다”고 했다. 이를 두고 일본 정부가 중재 성과가 불투명할 경우를 대비해 기대치를 낮추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아베 총리는 조만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회담 결과를 전달하고, 오는 28~29일 오사카(大阪)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 차 방문하는 트럼프 대통령과 대응 방침을 협의할 계획이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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