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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영토분쟁] <43> 다뉴브강의 엇갈린 시선, 슬로바키아와 헝가리의 수력댐 갈등

입력
2019.06.14 19:0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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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뉴브강 지도. 구글 캡처
다뉴브강 지도. 구글 캡처

최근 헝가리 유람선 사고가 발생한 다뉴브강(독일명 도나우강)도 분쟁지역이었다. 다뉴브강은 유럽에서 두 번째로 긴 강으로, 그 길이가 2,958㎞에 달한다. 독일에서 발원해 흑해 방향으로 오스트리아, 슬로바키아, 헝가리,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불가리아, 루마니아, 우크라이나 등 9개국을 통과하는 국제 하천이다. 다뉴브강은 인접한 모든 국가의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곳이지만, 슬로바키아와 헝가리의 가브치코보-나기마로스(Gabčíkovo–Nagymaros) 댐 건설 논란은 하천 분쟁으로 이어졌다.

1977년 체코슬로바키아와 헝가리는 국제 협약을 맺고 수력댐을 건설하기로 했다. 위치는 다뉴브 강을 따라 당시 체코슬로바키아의 가브치코보 상류에서 헝가리의 나기마로스 하류로 이어지는 지점. 하지만 헝가리 환경공학자들과 경제관계자들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혔다. 당시 계획은 나기마로스 부근에 댐을 건설해 물을 역류시켜 가브치코보 쪽에 건설한 수력발전소로 보내 전력을 생산하는 것이었다. 이에 헝가리의 전문가들은 생태계 파괴를 우려하며 그 피해는 온전히 헝가리 내륙에 있는 하천이 감내해야 한다고 항의했다. 1989년 헝가리 정부는 결국 수력댐 건설을 포기했고 당시 양국 정부가 공산당 체제의 위기를 겪으며 다뉴브강 수력댐 문제는 잊혀지는 듯 했다.

가브치코보-나기마로스 댐 사진. 위키피디아 캡처.
가브치코보-나기마로스 댐 사진. 위키피디아 캡처.

하천분쟁이 재점화 된 건 1991년 초다. 당시 분리 독립을 준비하던 슬로바키아에 다뉴브강 수력댐은 국가적 경제력을 보장할 수 있는 매력적인 카드였다. 수력댐을 통해 생산한 전력을 오스트리아에 수출하려는 계획이었다. 슬로바키아는 1977년 체결한 협정을 근거로 댐 건설을 강행했고 다뉴브강의 물꼬를 틀어 유수를 전환했다. 이에 분노한 헝가리는 1992년에 협정을 해제하고자 했다. 슬로바키아는 댐 건설을 지속하길 원했지만 나기마로스 지역은 헝가리 영토에 해당해 문제가 됐다.

결국 헝가리와 슬로바키아는 1993년 국제사법재판소(ICJ)에 하천분쟁을 공동 제소했다. 헝가리는 협약이 맺어진 이후 양국에 많은 정치ㆍ경제적 변화가 있었다고 호소했다. 슬로바키아는 댐을 완성하면 헝가리에도 이득이 된다고 항변했다. ICJ는 설립 이래 최초로 현지를 방문해 댐 주변 환경을 조사하며 특히 환경 문제를 유심히 들여다봤다. 그리고 1997년 최종판결을 내려 협정은 아직 유효하고 양국 모두가 계약을 위반했다고 전했다. 슬로바키아가 건설한 댐은 헝가리의 자연환경에 영향을 미쳤고 이는 자연의 ‘공평한 사용’ 원칙에 위배된다는 판단으로, 헝가리에 경제적으로 보상하라는 말도 덧붙였다. 이러한 판결은 ICJ 최초의 하천분쟁 해결 사례가 됐다.

조희연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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