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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돕지 않으면, 빈곤과 가난의 다음 당사자는 당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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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돕지 않으면, 빈곤과 가난의 다음 당사자는 당신이다

입력
2019.06.13 17:38
수정
2019.06.13 19:17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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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자료사진
한국일보 자료사진

올해 어린이날 한 부모가 2살, 4살 짜리 자식과 함께 세상을 등졌다. 빚 때문이었다. 부모의 가난 때문에 아이들은 그야말로 무고하게 희생됐다. 지난해 겨울 서울 종로구 고시원 화재 때는 창 문 없는 방의 세입자들이 불길을 피하지 못해 참변을 당했다. 우리 사회에서 빈곤과 가난은 상수다. 경제가 좋아져도, 어려워져도 달라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타인의 가난을 ‘안타까운 일’로 치부하고 서둘러 잊는다. 그러면서 빈곤과 가난의 ‘당사자’가 되지 않기 위해 발버둥친다.

‘우리는 가난을 어떻게 외면해 왔는가’는 2019년 판 빈곤 보고서다.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 ‘빈곤의 인류학’ 수업에서 진행한 ‘청년, 빈곤을 인터뷰하다’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다. 홈리스, 철거민, 복지수급자, 장애인, 노점상, 쪽방촌 주민을 돕는 반(反) 빈곤 활동가 10명을 학생 40여명이 인터뷰했다. 조문영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가 책을 엮었다. 빈곤을 사회적으로 고찰한 책은 수 없이 나왔지만, 청년들의 눈으로 짚어낸 빈곤 문제의 실태는 한층 날카롭고 적나라하다.

책 속 청년들은 빈곤 문제가 개선되지 않는 이유를 우리가 빈곤과 가난 자체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정부가 ‘홈리스’란 단어 대신 ‘노숙인’이라는 용어를 고집하는 게 단적인 예다. 국제인권법상 홈리스는 ‘노숙인 뿐만 아니라 고시원, 쪽방, 컨테이너 등에서 생활하는 사람’을 포함한다. ‘홈리스행동’의 이동현 활동가는 정부가 노숙인으로 범위를 한정 짓는 것은 수많은 홈리스들을 정책 대상에서 탈락시키기 위한 의도라고 꼬집는다.

자립이 모든 빈곤 대책의 선(善)인 것처럼 몰아가는 것도 문제다. 사회는 홈리스와 장애인에게 자립과 자활을 끊임 없이 강요한다. 그러나 자립은 마음만 먹는다고 뚝딱 되지 않는다. 성급하게 추진돼 실패를 거듭한 서울시 자활사업을 보자. 서울시는 홈리스들을 지하철 9호선 건설 현장에 일용직으로 내보내며 일반 노동자와 다른 색깔의 모자를 쓰게 했다. 홈리스들은 차별을 못 견디고 이탈했다. ‘홈리스들은 의지가 없다’는 낙인만 굳어졌다.

우리는 가난을 어떻게 외면해왔는가

조문영 엮음

21세기북스 발행ㆍ324쪽ㆍ1만9,000원

활동가들은 빈곤 대책의 발상 전환을 강조한다. 특정 시설에 몰아넣거나, 돈과 일자리를 쥐어주고 ‘알아서 살아라’는 식으로 장벽을 세우는 접근은 필패다. 빈민들에게는 상호 의지하고 협동할 수 있는 ‘공동체’가 필요하다.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주민들이 만든 소액금융대출이 좋은 예다. 주민들은 돈을 빌리고 갚아 나가는 과정을 통해 경제적 자활을 넘어 사회적 교류, 신뢰와 연대의 힘을 체득했다. 어엿한 인격체로 존중 받은 쪽방촌 주민들은 상호 의존하며 자립 의지를 착실하게 키웠다.

우리 사회에서 의존은 무능력한 자들의 기생(寄生) 정도로 취급 받는다. 그러나 가난하지 않더라도 의존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지구를 통틀어 아무도 없다고 책은 말한다. 동자동 공동체가 보여주듯, 의존은 독립과 자립의 반대말이 아니라 서로 협동할 수 있는 토대다.

누구든, 언제든, 빈곤의 당사자가 될 수 있다. 가난은 더 이상 그들의 문제가 아닌 우리의 문제다. 청년들이 빈곤 문제에 주목한 이유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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