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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시장 콤비시대 지나고… 이젠 12명 ‘집단 창작’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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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시장 콤비시대 지나고… 이젠 12명 ‘집단 창작’ 시대

입력
2019.06.14 04:4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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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팝스타 엘턴 존(사진 왼쪽)과 그의 전기를 다룬 영화 '로켓멘'에서 존을 연기한 배우 태런 애저튼.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국 팝스타 엘턴 존(사진 왼쪽)과 그의 전기를 다룬 영화 '로켓멘'에서 존을 연기한 배우 태런 애저튼.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사내는 뿔이 달린 오렌지색 의상과 공작처럼 화려한 깃털을 등에 단 채 문을 뻥 차고 들어온다. 영화 ‘로켓맨’(상영 중)에서 영국 배우 태런 애저튼이 보여주는 강렬한 모습이다. 그는 영국의 팝스타 엘튼 존을 연기했다. 영화는 존의 일대기를 뮤지컬 형식으로 다룬다. 존 하면 자동 반사처럼 떠오르는 건 번쩍이고 화려한 무대 의상이다. 에저튼은 60여 벌의 휘황찬란한 무대 의상을 번갈아 입으며 스크린에 존을 구현한다.

 ◇편지로 받은 ‘유어송’ 가사 30분 만에 작곡 

흰 건반 위를 화려하게 누비는 손가락, 시원한 고음과 역동적인 무대 매너... 무대에 서면 늘 빛났던 존은 이력도 화려했다. 비틀스, 마이클 잭슨, 엘비스 프레슬리에 이어 세계에서 네 번째로 가장 많은 음반 판매량(3억장)을 기록한 가수로 꼽힌다. 세계 팝 음악 시장의 아이콘이었던 그는 국내 음악 팬에게도 친숙한 ‘굿바이 옐로 브릭 로드’와 ‘타이니 댄서’ ‘소리 심스 투 비 더 하디스트 워드’ 등 숱한 히트곡들을 선보였다.

‘로켓맨’은 존과 작사가인 버니 토핀의 만남, 둘의 창작 과정을 비중 있게 다룬다. 토핀은 존 노래의 작사를 도맡다시피 했다. 존은 작곡과 피아노 연주 외에 작사엔 손을 대지 않았다.

영화에서 보여준 두 사람의 작업 방식은 특이했다. 존은 토핀에 가사를 받은 뒤에 작곡했다. 작곡이 끝나면 노랫말을 붙이는 작업 방식과 정반대였다. 토핀은 노래의 가사를 편지로 존에 보냈다. ‘유어 송’도 토핀으로부터 편지로 받은 가사에 존이 멜로디를 붙여 30분 만에 완성했다. 두 사람은 1967년에 음반사의 오디션에서 처음 만나 50년 넘게 합작을 이어왔다. 김상화 음악평론가는 “존과 토핀은 전업 작사가, 작곡가 콤비의 마지막 황금 세대”라며 “낭만적이고 재치 있는 가사와 멜로디로 팝송의 미학을 살려냈다”고 의미를 뒀다.

존과 토핀 같은 창작의 단짝은 한국에도 있다. 가수 윤상과 작사가 박창학이다. 윤상은 존처럼 곡을 쓰고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지만, 가사를 쓰진 않는다. 그의 감성적인 멜로디를 채운 노랫말의 주인공은 박창학이었다. 그는 ‘한 걸음 더’와 ‘너에게’ 등 윤상 초기 히트곡을 비롯해 그가 2년 전 낸 ‘그게 난 슬프다’까지 노랫말을 썼다. 윤상 측에 따르면 두 사람은 고등학교 동창으로 함께 스쿨 밴드(‘페이퍼 모드’)로 활동하며 인연을 맺었다. 가수 이문세와 고 이영훈(1960~2008) 콤비는 이들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가요사를 빛냈다. 이영훈은 ‘난 아직 모르잖아요’와 ‘이별 이야기’ ‘광화문 연가’ ‘옛사랑’ 등 이문세의 초기 히트작을 작사, 작곡했다.

가수 윤상-작사가 박창학(사진 왼쪽)과 가수 이문세-작곡가 이영훈은 한국 대중음악을 대표하는 창작 콤비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가수 윤상-작사가 박창학(사진 왼쪽)과 가수 이문세-작곡가 이영훈은 한국 대중음악을 대표하는 창작 콤비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2명이 함께… 아이돌도 참여하는 ‘송캠프’ 

이제 가요 시장에서 제2의 ‘존- 토핀’ ‘윤상-박창학’ 같은 조합을 찾기 어려워졌다. 곡 작업 방식이 집단 창작 방식으로 확 바뀌어서다. 특정한 장소에 여러 창작자가 모여 함께 곡을 만드는 ‘송캠프’가 대표적 사례다. 송캠프는 1990년대 후반 북유럽 지역에서 유행했던 집단 창작 방식이다. 2000년대 후반 SM엔터테인먼트 등 대형 K팝 기획사들이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보편화 됐다.

아이돌그룹 B1A4 멤버인 산들은 최근 낸 솔로 앨범 ‘날씨 좋은 날’을 만들기 위해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송캠프를 찾았다. 산들은 “폐쇄된 공항의 스튜디오에서 핀란드 작곡가 등 세 명이 모여 온종일 곡만 썼다”고 말했다. 이 과정을 거쳐 나온 곡이 ‘이 사랑’이다. 송캠프에선 적게는 2명, 많게는 10여 명이 한 조를 이뤄 곡을 만든다. K팝 아이돌그룹 한 곡의 저작권자(작사, 작곡가) 명단에 많게는 10여 명이 오르는 이유다. 아이돌그룹 방탄소년단이 지난 4월 낸 ‘맵 오브 더 솔: 페르소나’의 수록곡 ‘소우주’의 작곡자 명단엔 12명의 이름이 올려져 있다.

여러 명이 참여해 만들어진 곡의 장점은 보편성이다. 참여자의 국적이 다양하고 문화적 배경이 다종하면 세계 여러 사람들의 귀에 맞는 음악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노래의 집단 창작은 K팝의 세계화ㆍ산업화와 맞물려 있다. 지혜원 대중문화평론가는 “다양한 국적의 창작자가 모이는 K팝의 집단 창작 시스템은 무국적성을 띠어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콘텐츠를 만드는 데 유리하다”며 “워낙 여러 사람이 창작에 참여하다 보니 곡으로 아티스트의 정체성을 확연히 보여주는 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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