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변호사 임로즈 파르베즈ㆍ ‘고문 보고서’ 저자 샤지아 아하드 인터뷰
인도령 카슈미르의 ‘여름 수도’인 스리나가르 중심가 있는 랄촉(‘붉은 광장’이라는 뜻)에서 인도 군인들이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랄촉은 1947년 10월 자와할랄 네루 당시 인도 총리가 “카슈미르의 미래는 카슈미르인들이 국민투표로 결정한다”는 연설을 남긴 장소지만, 아직까지도 국민투표는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 랄촉은 오히려 인도보안군이 배치된 ‘점령’의 상징적 공간이다. 스리나가르=이유경 프리랜서 기자

인도령 카슈미르의 인권변호사 임로즈 파르베즈는 오전엔 법원으로, 오후엔 인권단체 사무실로 출근한다. 평생 인권운동에 매진하며 동료들의 암살 현장을 지켜봐야 했던 그는 70대 중반인 지금도 위험으로 가득한 그 길을 꼿꼿하게 걷고 있다. 현재 ‘잠무-카슈미르 시민사회연합(JKCCS)’의 대표이기도 하다.

JKCCS는 지난달 20일(현지시간) 549쪽에 달하는 ‘고문: 인도령 카슈미르 통치를 위한 국가의 도구’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냈다. 인도령 카슈미르에서 벌어진 각종 인권침해 사례 중 고문에만 초점을 맞춘 첫 보고서다. 1990년 무장항쟁 초기부터 발생한 ‘고문 30년’의 아픈 역사에 새겨진 432건의 사례를 집중적으로 파헤쳤는데, 이 중 301건이 민간인 사례다. 주요 저자인 샤지아 아하드는 그러나 기자에게 “432건은 새 발의 피”라고 했다. 임로즈 대표도 “고문은 인도가 카슈미르를 통치하는 정책의 일환”이라고 단언했다. “최고위층 정책 결정 단위에서 카슈미르인들에게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의도가 담긴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다음은 임로즈 대표와 아하드를 지난달 27일 스리나가르 JKCCS 사무실에서 각각 인터뷰한 뒤, 대담 형식으로 재구성한 내용이다. 두 사람 모두 ‘카슈미르의 군사화’가 인권침해를 더욱 부추긴다고 강조했다. 임로즈 대표는 특히 이런 현실에 대해 “인도 보안군이 원하는 바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인도령 카슈미르의 대표적인 인권 변호사 임로즈 파르베즈. 스리나가르=이유경 프리랜서 기자

-고문을 집중적으로 파헤친 보고서는 처음이다. 카슈미르 사회 반응은 어떤가. 인도 정부와 언론의 반응도 궁금하다.

샤지아 아하드(아하드)=카슈미르 사회는 상당히 수긍하는 편이다. 거의 모든 이들이 고문에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에 모두가 이 보고서에 자신도 연계돼 있다고 느끼는 것 같다. 인도 정부는 (으레 그렇듯) 반응이 없다. 인도 주류 언론도 ‘더 힌두’라는 매체 외에는 다들 외면했다. 다만 대안 언론들은 거의 대부분 보도했다.

임로즈 파르베즈(임로즈)=강제실종과 구금 중 사망, 학살 등의 문제와는 달리, 고문은 그동안 제대로 주목받지 못했다. 전 세계 시민사회의 눈길을 끌고자 보고서를 발표했다. 관타나모베이 포로수용소의 수감자 800명에 대한 고문이 글로벌 이슈가 된다면, 이곳 카슈미르도 같은 수준의 관심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카슈미르 관련 보도는 무장반군 공격 위주로 이뤄진다. 일반 주민들이 어떻게 사는지, 어떤 대우를 받는지, 인권침해나 군의 폭력은 어떠한지 등은 실제 발생 수준에 비하면 주목도가 약한 편인 것 같다.

임로즈=카슈미르 이슈는 팔레스타인과 유사하다. 우리도 (인도의) 점령하에 있고, (카슈미르인들이 그들의 운명을 결정하도록 국민투표를 해야 한다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47호, 1948년 4월 21일 채택)도 있었다. 인도는 유엔 결의안에 따르겠다면서도 국민투표 실시에는 미적거렸다. 안타깝게도 국제사회는 이 문제를 인도와 파키스탄의 영토분쟁 프레임으로만 보고 있다. 카슈미르인들이 자치를 추구하며 벌이는 투쟁은 ‘테러리즘’ 시각에 갇혀 있다. 실상을 보면 알겠지만 이곳은 60만 병력이 넘는 군대가 주둔해 있다. 지구상 어느 곳도 이 정도로 군이 주둔하는 경우는 없다. 인도 당국 자체 발표만 봐도 카슈미르 반군은 고작 300명 수준인데, 아주 불균형적인 배치다.

-경제협력이라는 이름 하에 한국정부는 지난해부터 부쩍 나렌드라 모디 총리의 인도 정부와 가까워지고 있다. 혹시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궁금하다.

임로즈=한국뿐 아니라 어느 나라든 정부는 국익을 우선시하는 이기적 성향이 있다. 그럼에도 (한국은) 민주주의 국가 아닌가. 게다가 양국(한국-인도)의 무역 거래라는 것도 안보 이슈와 균형하에서 고려돼야 한다. 두 핵강국이 대치하는 남아시아에서 한국이 대단히 멀다고 보는가. 이곳이 분쟁에 휩싸이면 그곳도 당연히 영향을 받는다. 한국 정부는 도덕적 차원에서라도 인권 문제를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나는 광주 민주화 운동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불의에 맞서 싸운 그 시민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불의에 맞서 싸우고 있다. 양심적인 이웃(국가)들, 아시아 친구들이 카슈미르 이슈에 완전히 무관심한 현실은 내게 꽤 고통스럽다.

잠무-카슈미르 시민사회연합(JKCCS)이 최근 발표한 ‘고문 보고서’의 핵심 저자인 샤지아 아하드. 스리나가르=이유경 프리랜서 기자

-고문에 특히 연루되는 부대나 담당 사령관이 있나.

아하드=라슈트리아 라이플(인도군 내 대반군 작전 담당 부대)이나 각종 준(準)군사조직들, 특수작전그룹(SOG, 잠무-카슈미르 경찰 산하의 대반군 작전 부대) 모두 똑같이 잔혹하다. 주목할 건 서로 다른 이 조직들의 고문 방식이 거의 다 유사하다는 점이다(보고서가 언급한 고문 방식은 발가벗기기와 구타, 물고문, 성기 전기고문, 거꾸로 세우기 등 다양하다). 누가 명령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카슈미르에서 고문은 이미 팽배해 있다. 정보를 좀 얻기 위해 고문하는 건 그냥 괜찮다고 보는 듯하다.

-고문 등 인권침해와 무장반군 활동의 상관관계에 대해 어떻게 보고 있나.

임로즈=무장투쟁은 우선 신념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교육받은 부유층 출신 청년들이 적잖게 나오는 것도 그들이 신념에 따라 결정했다는 걸 방증한다. 그런데 무장투쟁에 참여하는 거의 모든 이들이 인권침해에 노출된 사실이 있다. 고로 두 가지는 연결돼 있다. 가족, 친지, 친구들이 고문당하는 걸 본 이들이 (무장투쟁에) 동참하는 것. 나는 이게 인도군의 의도라고도 생각한다. ‘대반군 작전’이라는 이름하에 군에게도 주어지는 혜택이 적지 않다.

-‘비군사화(demilitarization)’ 문제가 시급한 것 같다.

임로즈=인도 보안군이 점령한 카슈미르 면적은 약 625㎢나 된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점령 영토가 약 325㎢쯤 된다. 카슈미르가 거의 두 배다. 군사화는 단지 땅의 점령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방대한) 점령으로 주민들은 심리적 압박감에 시달리고, 건강에도 상당한 악영향을 받는다. 게다가 보안군에게 절대적인 면죄부를 주는 보안군특별권한법(AFSPA) 때문에 군은 무슨 짓을 하더라도 처벌받지 않는다.

아하드=군사화된 지형은 의심할 여지 없이 인권침해를 더욱 부추기는 요소다.

-고문 보고서 첫 사례가 전직 무장반군의 스토리, 무기를 내려놔도 계속 고문당하는 사례였다. 과거 무장반군 활동을 했던 이들의 ‘사회복귀 프로그램’은 어떠한가.

아하드=그냥 문서에만 존재하는 정책이라고 보면 된다.

12일 인도령 카슈미르의 스리나가르 시내에서 인도 준군사조직 소속 군인이 병사가 거리를 지나가는 무슬림 카슈미르 주민들을 바라보고 있다. 카슈미르는 오늘날 전 세계에서 가장 군사화한 지역으로 꼽힌다. 군인의 날카로운 눈매에서 카슈미르를 감도는 긴장이 그대로 느껴진다. 스리나가르=AP 연합뉴스

지난 10일 인도법원은 지난해 1월 잠무-카슈미르주의 카투아에서 발생한 8세 소녀 아시파 바노에 대한 집단강간 사건과 관련해 힌두 사제 3명에게 종신형을, 경찰관 등 3명에겐 징역 5년을 각각 선고했다. 만일 이 사건의 가해자가 카슈미르 주둔 보안군이었으면 어땠을까. 아마도 수사 자체가 진행되지 않았을 것이다. 설사 가해자가 밝혀진다 해도 처벌은 이뤄지지 않는다. 임로즈 대표의 지적대로 카슈미르 주둔 보안군은 경찰을 포함해 완벽한 면죄부를 법으로 보장받는다. 바로 1990년에 도입된 AFSPA 때문이다.

강간 사건의 가해자를 군으로 지레 가정하는 건 아니다. 실제 보안군에 의한 강간 사건은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예컨대 2009년 5월 29일 카슈미르 남부 소피안 지구에선 올케-시누이 관계인 아시야 잔(당시 17세)과 닐루파르 잔(당시 22세) 등 두 명의 여성이 인도군에 납치돼 성폭행을 당한 뒤 살해된 사건이 벌어졌다. 닐루파르는 심지어 임신 중이었다. 또, 1991년 2월 23일 카슈미르 북부 쿠파라 지구의 마을 두 곳(쿠난, 포슈포라)에선 약 30명의 여성이 집단강간을 당하기도 했다. 이 사건을 다룬 책 ‘쿠난 포슈포라를 기억하십니까?’의 공동 저자 5명 중 한 명인 나타샤 라더는 기자에게 최근 사례들도 있지만, 사회적 시선이 두려워 피해자가 신고하지 않아 정확히 알기는 힘들다고 했다.

성폭력 사건은 개별 사건으로도 충분히 위중하다. 그러나 카슈미르 분쟁 지역에서 카슈미르인들에겐 점령군과 다를 바 없는 인도보안군이 저지른 성범죄는 전쟁범죄나 반인도주의 범죄에 해당할 수 있다. 그 전쟁범죄조차 카슈미르에선 AFSPA로 인해 법적 면죄부를 받는 게 현실이다.

이유경 국제분쟁전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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