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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한인 가족의 끔찍한 민낯…집은 과연 가장 ‘안전한’ 곳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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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한인 가족의 끔찍한 민낯…집은 과연 가장 ‘안전한’ 곳일까

입력
2019.06.14 04:4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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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1995년 출간된 이창래 작가의 ‘네이티브 스피커’(국내 제목 ‘영원한 이방인’)는 ‘한국계 미국인 작가가 쓴 가장 대표적 작품’으로 꼽히곤 한다. 이후로도 여러 한국계 미국인 작가들이 탄생했지만, ‘부모 세대와 갈등하며 미국인과 한국인 사이에서 정체성 혼란을 겪는 이민 1.5세대들의 이야기’라는 얼개가 반복됐다.

재미 한인 작가 정윤의 장편소설 ‘안전한 나의 집’ 역시 이런 도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1970년대 미국으로 건너 와 성공한 아버지 ‘진’, 영어 한 마디 못하는 채로 남편을 따라 온 어머니 ‘매’, 미국인 여성과 결혼해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나려고 애쓰는 ‘경’. 소설은 경의 가족을 중심으로 2세대에 걸친 재미 한인 가족의 균열과 붕괴를 그린다.


 안전한 나의 집 

 정윤 지음ㆍ최필원 옮김 

 비채 발행ㆍ388쪽ㆍ1만 3,800원 

소설은 경의 집에 어머니 매가 전라 상태로 뛰어 들어오는 충격적 장면으로 시작한다.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된 어머니는 정신이 반쯤 나간 채로 “아버지가 다치셨어”라는 말만 반복한다. 허겁지겁 찾아 간 부모의 집에서 경은 충격적 장면을 만난다. 피투성이의 아버지, 어머니처럼 알몸 상태로 정신을 잃은 가정부, 그리고 마약과다 복용으로 숨진 시체. 무자비한 강도의 짓인가 싶지만, 석연치 않다. 경의 부모가 그 날의 일을 입에 올리는 것을 극도로 꺼려하는 것부터 그렇다. 이런저런 갈등을 겪는 과정에서 경은 그날 하루 그의 가족이 겪은 ‘외부의 폭력’이 아니라, 오랫동안 가족을 옭아 맨 ‘내부의 폭력’이야말로 해명해야 할 대상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행복을 가장하거나 갈등을 외면하는 것은 가족의 흔한 속성이다. 가족의 진짜 민낯은 외부 충격으로 가면이 깨지는 순간 드러나기 마련이다. 서로를 어떻게 보듬어야 할지 모르는 경의 가족은 회복의 가능성을 찾지 못한다. 대학 종신교수가 된 경의 아버지는 성공한 이민 1세대로 칭송 받지만, 그의 실체는 아내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무자비한 가장이다. 경의 어머니는 운전하는 법조차 깨우치지 못한 채 무기력한 속박 상태에 갇혀 산다. 경은 부모와의 연을 끊는 것으로 부모와는 다른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지만, 비극은 끝내 대물림 되고 만다.

정윤 작가. 비채ㆍStephanie Craig 제공
정윤 작가. 비채ㆍStephanie Craig 제공

소설 속 한인 사회는 미국 속의 섬 같은 낡은 가부장 사회다. 여성들은 남편, 아버지, 시부모에게 복종하고, 남성들은 개인의 실패를 아시안이라는 정체성에 돌리며 사회와 불화한다. 경 역시 한국식 양육의 피해자로만 여길 수 없다. 그는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현재를 망치도록 그저 내버려둔다. 경의 가족은 물질적 피해보다 더 큰 것을 잃고 난 이후에야 경의 진정으로 지켜야 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지만, 이미 늦어버린 뒤다.

정윤 작가는 서울에서 태어나 미국 노스다코다 주에서 성장한 이민 1.5세대다. 이 소설이 그의 데뷔작이다. 소설은 2016년 BBC컬처 ‘이달의 책’에 선정됐고, 미국 보스턴 작가협회가 수여하는 ‘줄리아 워드 하우상’ 등을 수상하며 주목 받았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집’이 안전을 보장하지 않고, ‘핏줄’이 사랑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소설”이라고 극찬했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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